▲ 김영수 대전둔원초 교사 |
지난 15년 세월 탓에 모두 늙었는데도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야, 어쩜 하나도 안 변했냐? 그대로다. 하나도 안 늙었어!”를 연거푸 외쳐댔다. 남들이 우리끼리 하는 말을 들었다면 정말 웃긴다고 했을 것이다. 그날 우리는 자연스럽게 교육 현장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교육 현장에서 우리가 겪은 어려움과 갈등, 문제점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과 최선은 무엇이며 앞으로 어떻게 교사로서 살아야 할지 등을 아주 심각하게 이야기했다. 때론 서로 다른 생각에 언성도 높아지고, 서로 자기의 생각이 옳다며 고집을 부리기도 하면서 그렇게 밤은 깊어갔다.
밤새도록 나누었던 이야기 중, A 선배의 말이 기억에 남아 이곳에 적어보려 한다. 그 선배는 아산에서 참교육을 실천하고 있는 아주 존경스런 교사다. 학생들과 함께하는 캠프며, 학부모 참여수업, 아빠 학교 등 도시학교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교육을 선도해가는 교사다.
대학 시절부터 남다르게 교육에 대한 열정이 깊었고 늘 학생들이 주인이 되는 수업에 대해 고민해왔던 그였다. 대학 때부터 그 선배의 생각이 '참 옳다. 멋지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의 난 현실에 안주해버린 '그냥 교사'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신규 때 가지고 있던 열정은 다 어디로 갔는지, 편한 길로 가기 위해 꾀를 낸 건 아닌지…. 지금의 내 모습을 되돌아볼 때면 그 선배가 나에게 채찍이 되어 주었다.
선배가 아는 정신과 의사가 책 속에 적은 내용이라면서 해 준 말은, '교사는 쓰레기통이다. 학생과 학부모들이 온갖 것들을 버려대는 쓰레기통. 게다가 학교장, 동료교사들의 것(?)까지 담아내야 하는 쓰레기통'이란다. 나는 그 선배의 말을 들으면서 '교사가 쓰레기통이다(?), 쓰레기통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어디에다 나를 비워내야 하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니 솔직하게 말하면, '왜 교사가 쓰레기통이 되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나를 괴롭혔다.
그렇게 내 머릿속을 괴롭혔던 '교사는 쓰레기통이다'라는 말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이해가 되어 가고 있다.
오늘 아침에도 우리 반 녀석들은 나를 보자마자 시시콜콜 어제 있었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선생님, 엄마랑 마트에서 예쁜 머리핀을 샀어요. (머리핀을 가리키며)이거 예쁘죠?”
“그래. 아주 잘 어울리는구나.”
쉬는 시간에도 녀석들은 내 주위를 떠나지 않고 재잘거린다. “선생님, 00이가 복도에서 저한테 뭐라고 했어요.”
“뭐라고 했는데?”
“몰라요. 기억이 안나요.”
“그렇구나. 생각나면 얘기해주렴.”
순간순간 쉴 새 없이 학생들은 나에게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낸다. 들어달라고, 알아달라고, 이해해달라고. 그때마다 나는 얼마나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던가? 혹여 바쁘다는 핑계로 내 귀를 막았던 적은 없었나. 쓰레기통 문을 꼭 닫아걸고 아무것도 버리지 못하게 학생들을 거부했던 적은 없었는지 생각해 본다.
내가 정말 교사로서 쓰레기통이 되어야 한다면, 내 안에 있는 것들을 모두 비우는 게 먼저가 아닐까 싶다. 내 속에 가득 찬 나의 것들을 어느 정도 비워내야 학생ㆍ학부모ㆍ동료교사들의 쓰레기통이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난 오늘도 이렇게 글을 쓰면서 내 속을 비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리고 내일 아침. 깨끗하게 비워진 머리와 마음으로 교실 문을 활기차게 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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