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겨울의 문턱을 넘을 즈음에는 감기가 극성을 부리기도 한다. 지금은 독감예방주사를 비롯한 여러 가지 효과 좋은 약들이 개발되어 환절기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콜록콜록! 기침을 진정시키는 물약이 거의 전부였다. 집집마다 밤을 설치는 기침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다 했고 TV, 라디오 광고방송 가운데 콜록! 콜록! 기침을 진정시키는 효과 좋은 약이라는 광고가 대부분이었다. 이렇듯 약이 귀한 시절이었다.
지금은 한 집 건너 한 집이 병원이고 약국일 정도로 여러 가지 필요한 약들을 구하기가 쉽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약을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어디에는 어떤 것이 좋다더라”는 민간요법을 많이 활용하여 왔다. 민간요법과 현대식 약국 사이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이 약장수였다. 일종의 초기 서양식 의약품 개발에 뛰어든 이름 없는 제약회사나 민간요법전문가의 시제품들을 선전하고 판매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바로 약장수였다. 약장수들은 5일장이 열릴 때마다 이곳저곳 찾아다니며 장사를 위한 “판”을 벌이곤 하였다. 사람들을 끌어 모아 약을 팔기 위해 북이나 장구, 꽹과리 등을 동원하기도 하고, 때로는 서커스 복장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수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연극배우, 때로는 만담가, 때로는 판소리, 민요를 구사하는 국악인이 되기도 하였다. 그야말로 종합예술인 그 자체였다.
이러한 재미있는 극적인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서 장날마다 구경꾼들이 모여들고 선전하는 의약품을 사곤 하였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약장수의 재미있는 공연을 보기 위해 장날이 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학생들이 소풍을 갔을 때도 장기자랑 가운데 하나가 “약장수”이기도 했고 넉살좋고 입심 좋은 사람 별명 또한 “약장수”였다. 지금은 소음처럼 느껴질지 모를 약장수가 악기소리와 함께 “가지가지 속병! 어깨 넘어 등창! 먹으면 낫고 안 먹으면 안 낫고! 한 번 잡숴봐!” 하고 읊던 사설이 기억 속을 맴돈다.
정동찬·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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