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난순 교열부장 |
무화과는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 해서 다산과 사랑의 상징의 과일이다. 잘 익은 무화과를 쪼개면 물을 함빡 머금은 연분홍색 속살이 자그르르 쏟아질 것만 같다. 달큼한 향은 징그러울 정도로 관능적이다. 그래서 서양속담에 '잘 익은 무화과는 흐트러진 모양으로 유혹하는 여자의 뒷모습같다'고 한 모양이다.
꽃도 그 범주에 포함된다. 조지아 오키프는 꽃을 많이 그린 화가다. 그녀는 자신의 그림에 대한 성적인 해석을 거부했지만 해부학적인 확대된 꽃 그림은 인간의 어떤 부분과 유사한 것이 사실이다.
성(性)은 인간이 피해갈 수 없는 운명적인 것이다. 문명의 발달로 인간사회는 개방사회로 진입했다. 하지만 성은 여전히 함부로 언급하거나 관심을 가져서는 안되는 금기의 대상이다. 그런 문화에서 인간은 성과 관련된 몸의 노출을 꺼리거나 엄격하게 금지하는 교육을 받아왔다. 그러나 감추고 억제하는 사회는 관음증을 부추긴다. 인간은 금지된 것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그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호텐토트 비너스'는 관음증적 시선이 빚어낸 대표적인 산물이다. 19세기 유럽 제국주의자들은 남아프리카 출신 사르키 바트만이라는 기이한 몸의 여성을 전시용품으로 이용했다. 바트만은 '열등한' 흑인으로서, 여성으로서 최소한의 인간적 존중을 받지 못한 채 대중들 앞에서 과학적·성적 탐구의 대상으로 발가벗겨졌다.
은밀히 엿본다는 의미의 관음증은 폭력성을 내포한다.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은 언어와 종교와 도덕심, 즉 문화를 가졌다. 그렇다면 수준높은 종의 인간사회에서 약자, 특히 남성의 여성에 대한 폭력성은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날마다 성폭력이 이루어지고 있는 세상에서 남녀의 차이는 습성과 기질의 차이인가, 아니면 다른 해석의 여지가 있는가.
여성학자들은 남자들은 가부장적인 세계에 살면서 강대해지고, 여자들은 이와 동일한 문화적 경험에 의해 좌절됐다는 것이다. 어느정도 사회적·이념적인 남녀평등이 구현된 현대 들어서도 전쟁이 발생했을 때조차 살인은 남자들이 전담한다. 유괴, 테러등 온갖 범죄도 남자들이 저지르는 비율이 훨씬 높다. 그러면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지위와 힘을 보유하면 여성도 남성과 똑같이 폭력적으로 될까.
진화생물학자들에 의하면 유감스럽게도 수컷의 잔인성과 힘에 대한 열정은 자연스럽단다. 여성 또한 그런 남자들에게 어느정도 매력을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애쉴리를 향한 스칼렛의 연심에 대한 질투심으로 레트는 스칼렛의 두개골을 부숴버리겠다고 협박한다. 그리고 레트는 침실에서 스칼렛을 야만적으로 다룬다. 스칼렛은 난폭하게 이용당한 느낌이었으나 그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문제는 정치적 권력에 신체적 힘이 보태져 여성에게 치명적인 해를 가하는데 있다. 이 정치권력과 힘이 개인화돼 남자들의 성폭력이 사회·국가적으로 제어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인간사회의 대세이고 수많은 장소에서 그 흐름이 뒤바뀌어 본 적이 없다.
수원 오원춘 사건, 나주 어린이성폭행 사건, 전자발찌 살인사건, 서산 아르바이트생 사건…. 우리사회는 날마다 크고작은 성폭력범죄에 시달린다. 이제 거리는 여성이 두려움, 불안, 광적인 공포를 배우는 장소가 됐다. 전문가들은 승자독식의 사회, 사회적 배제와 빈곤이 갈수록 공고화되는 사회에서 좌절된 사람들의 분노의 표출이 성폭력이라고 진단한다. 감강자 전 종암경찰서장은 성적 소외남성들의 성폭력으로 이어지는 상황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공창제를 주장한다. 현실적으로 볼때 자구책은 될수 있지만 근본적인 문제해결은 어려워보인다.
암담한 사실은 남성의 폭력성이 전인류에 보편적인 것이 공통이다. 그리고 남성들의 폭력성은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진일보하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남성이 여성을 파괴할 권리를 가지는 건 아니지 않은가. 여성은 남성이 공포의 대상으로 기억되길 절대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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