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충식 논설실장 |
설명 듣기로는 “세종시 이전 공무원 1만3425명 가운데 현지 아파트를 분양받은 공무원이 8390명(62%)인 점을 감안한 조치”라 했다. 일리가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오피스텔이나 소형주택 물량이 적어 대기 순번표만 받고 돌아간다니 그럴 만도 하겠고 가족의 관점에서 맞벌이, 자녀 교육 등 인간적인 고충은 이해할 법하다. 그럼에도 38%를 위한 통근버스는 정당한 '솔루션'이 아님을 동시에 읽게 해준다.
어느 하나의 선택 행위는 나머지 선택지의 포기를 의미한다. 세종시가 자발적 수요가 아닌, 정치적 목적의 산물이더라도 최소 대가를 치르는 선택을 하고, 포기의 손해보다 선택의 이득이 커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지금까지는 간과된 플러스 개념을 적용해야 한다. 인구공학적으로는 순이동(=전입-전출)을 수도권 인구로 채워 충청권 가득 '세종시 흘러넘침 효과'를 내고 수도권 후방효과보다 세종시 배후효과를 낼수록 좋다. 그 선도적 중심에 정부청사와 소속 공무원들이 있다.
그런데 그러한 돌파구 대신 통근버스에서 도피처를 찾는다. 든 자리 몰라도 난 자리 안다고, 당장은 충청권 인구 유출을 걱정하는데 말이다. 얼마 전, 수도권 인구의 고작 2.2%인 50만명 짜리 세종시로 수도권 인구가 감소되겠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과밀 억제에 부족하면 1000만명 정도로 수정하면 되겠다고 삐딱하게(?) 답해줬다. 국토 12% 면적에 인구 절반이 사는 수도권은 안녕하냐고도 되물었다. 현재 세종시 주민등록 인구가 10만8000명을 넘어섰다지만 다른 지자체 사정은 다르다. 60년대 22만명에 달했던 공주시의 경우, 인구 4.8%를 세종시에 뚝 떼어주고 10만명선 붕괴를 걱정하는 형편이 됐다.
진짜 걱정거리인 통근버스의 선행학습은 세종시 인근 충북 오송에서 아침저녁으로 실사영화처럼 볼 수 있다. 식약청 등 6개 국책기관 직원의 36%가 수도권 9곳과 오송을 잇는 11대의 친절한 출퇴근버스로 오간다. 집이 없어서가 아님은 오송생명과학단지 내 아파트 미분양 속출로 금방 증명된다. 이주가 싫거나 시골 의미를 가진 지방(country)을 꺼려 벌어진 현상이다. 똑같은 현상이 세종시에서 빚어질 개연성이 있다. 차기 정부 조직개편만 기다리며 수도권 컴백을 꿈꾸는 공무원들에게 통근버스는 '희망버스' 구실을 한다. 아파트 비중이 38.6%(전국 아파트 비중은 57.7%)인 세종시의 주택 부족을 정책 실패로 인정한다면 천막 치고 살겠다는 시늉이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통근버스가 키운 것은 출퇴근하며 관망하겠다는 공무원의 의지 말고는 없다. 누군가는 곧 세종~서울 가상 시뮬레이션으로 하루 4시간 이상의 시간을 길바닥에 까는 비효율이라며 집합적 흥분을 부추길지 모른다.
기막힌 사실이 하나 더 있다. 출퇴근 공무원 수요가 늘면서 요즘 KTX 광명역 부근은 주택 전세금이 올 초보다 20% 오르며 꿈틀거린다. 광명은 서울 구로·양천·금천구 등과 맞붙은 준(準)서울 생활권이다. 이 지경에서 통근버스를 도입하면 세종시의 교육과 의료 등 도시 기반은 늦춰질 것이다. 정치적 편의주의의 산물인 통근버스가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분류·정리돼 있는 추론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 '석 자 베를 짜도 베틀 벌리기는 일반'이다. 짧은 옷감에도 베틀 한 대가 소요된다. 청와대 제2집무실과 국회 분원 설치도 이런 쉬운 논리에 근거한다. 경국대전까지 끌어들인 헌법재판으로 규모가 줄었지만, 행정도시란 그냥 붙여주는 이름이 아니다.
비록 세종시가 아직 유출 인구를 최대한 흡인할 조건(풀 이펙트·pull effect)을 못 갖췄을지라도 통근버스 정책이 조기 정착에 꼭 필요하거나 불가피한 정책이라면 거짓말이 된다. 다 아는 '뻥'은 뻥 아니라고 우기면 모를까, 조기 정착의 걸림돌이다. '길 닦아 놓으니 뭐가 먼저 지나간다' 했던가. 40인승 30대의 통근버스로 1200명의 공무원을 실어나르는 것으로 주택·전세난을 풀려 한다면 완전히 헛다리짚은 것 같다. 영구적이든 한시적이든 통근버스 운행 계획은 접어야 한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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