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동성당에서 그녀의 예술세계와 인생 이야기와 노래를 들려주게 된 계기는 전적으로 김정수 내동성당 주임신부와의 38년 우정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녀가 7년반 동안의 가수 생활을 접고 이화여대 서양학과(68학번) 시절 전공을 되살려 79년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을 때, 파리에서 유학중이던 김정수 신부를 만나면서 둘의 우정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김포 출생인 그녀가 대학 신입생 환영회때 기숙사에서 기타치며 부르던 팝송을 듣고 교내에서 일약 노래 잘부르는 미대생으로 소문이 나 5월에 열리던 대학축제인 메이데이때 초청가수로 왔던 패티김으로부터 매주 패티김쇼 출연 제의까지 받았을 정도로 그녀는 노래를 잘했다.
그녀는 이후 샹송과 팝송과 가요를 아우르며 가창력 뛰어난 글래머 가수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정 교수는 “79년 야마하 송 페스티벌 때 한국 대표로 나가 세계 각국 가수들과 경쟁해 우수가창상을 받은 후 유종의 미를 거두고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고 회고했다.
“파리의 센강과 에펠탑과 몽마르트 언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2층에서 오직 그림만 그리며 살았죠. 아르테코 국립미술장식학교에서 석사학위 받고 파리 7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13년이 걸렸는데 그당시 너무나 고독하고 힘들어 이브 몽탕의 '고엽'을 흥얼거리며 외로움을 달랬지요. 오늘 이 노래를 오리지널 불어 버전으로 들려드릴게요.”
정미조 교수는 “92년 귀국해 3개 대학에서 강의하다 93년부터 지금까지 수원대학 교수로 재직중”이라며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달란트인 노래와 그림으로 제가 추구해온 예술세계를 성취해 왔다”고 말했다.
윤기 흐르는 단발머리에 늘씬한 몸매, 세련된 패션 감각에 단아하고 지적인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그녀가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들려주는 노래가 성당에 모인 청중들을 흠뻑 매료시킨 가운데 가을밤은 그렇게 깊어가고 있었다.
한성일 기자 hansung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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