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 원장 |
한때는 강렬한 태양빛 아래 녹색을 뽐내며 나무에 영양분을 공급했을 잎사귀들이 가을바람에 떨어져 점점 부서지고 흩날려 사라지고 있다. 길모퉁이에 쌓인 은행잎, 단풍잎, 플라타너스잎 등 저마다의 색깔을 가진 낙엽을 보면서 세상과 이별하더라도 의미 있고 겸손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반추해 본다.
가을이 낙엽에만 있지는 않다. 향기롭게 피는 구절초에도, 단풍처럼 붉게 묻든 홍시에도, 군불에 구워먹는 고구마에도, 황금빛 물결 출렁이는 가을들판에도 한해의 결실을 맺는 자연의 위대한 섭리가 숨어있다. 국립대전현충원 묘비 닦기 봉사활동을 온 어린이들의 청아한 이야기 소리에도 가을이 녹아있다. 경찰묘역에서 고사리 같은 아이들의 손이 비석에 뭍은 먼지를 닦느라 분주하다. 한 어린이에게 물었다. “여기 잠들어 계신 분이 어떤 분인지 알고 있니.” 아이는 “6·25전쟁 때 우리나라를 위해 싸우다 돌아가신 분이요”라고 대답했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여기 잠들어 계신 분들 덕분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고 있는 거예요”라는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옷소매를 걷어 붙이고 비석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는 아이들을 본 유가족들의 얼굴에 하얀 국화처럼 밝은 미소가 번진다.
지난해 12월 14일, 인천 중구 인천해양경찰서 전용 부두 운동장에서 고 이청호 경사의 영결식이 열렸다. 이 경사가 생전에 수시로 드나들었던 이 부두에는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을 슬퍼하듯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눈발이 흩날렸다.
이 경사는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7시 인천 옹진군 소청도 남서쪽 해상에서 불법조업을 하던 200t 중국어선을 해양경찰청 특공대원과 함께 나포했다. 선상에서 조사를 벌이던 중 중국 선장은 갑자기 흉기를 휘둘렀고 특공대원 중 한명인 이 경사는 방탄조끼 옆 틈새로 왼쪽 옆구리를 깊이 찔렸다. 붉은 피는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고, 이청호 경사는 과다 출혈에 따른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구조헬기로 인천 인하대 병원으로 긴급하게 이송했지만 그는 결국 눈을 뜨지 못했다.
살신성인의 자세로 시민구조에 앞서다 순직한 고 배근성 경위가 있다. 지난해 12월 4일 새벽.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의 한 도로는 짙은 안개와 비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았다. 그 어둠을 배근성 경위가 헤치며 뛰어왔다. 교통사고 현장에 쓰러져 있는 주민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헐레벌떡 뛰어와 주민의 몸에 손을 댄 순간, 배근성 경위의 몸에 고압의 전류가 흘렀다. 그렇게 배근성 경위는 한순간에 허망하게 떠났다. 경찰묘역에는 다른 묘소와는 달리 시신으로 안장된 고인들도 잠들어 계신다.
바로 1989년 5월 3일 발생한 동의대학교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출동했다 순직한 7명의 경찰관들이다. 그중에는 듬직한 아들이었던 모성태 경위가 있다.
어려운 집안형편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군에 입대하면서 “엄마, 빨리 군대 갔다 와서 돈 벌어 편히 모시겠습니다”라고 말하는 효자였다. 여동생은 오빠를 위해 200만 원짜리 적금을 들었지만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온 오빠에게 동생은 해줄 것이 없었다. 묘비 앞에 옛 기억처럼 뿌옇게 빛바랜 가족사진들이 보인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했기에 우리 모두의 가슴에 새겨져야 하는 분들인데 가족들의 가슴에만 남아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이곳 경찰묘역에는 6·25전쟁 전사자와 사회질서 확립에 애쓰다 순직한 경찰 등 약 4100여위가 안장돼 있다.
10월 21일은 67주년을 맞는 경찰의 날이었다. 국민의 안녕과 사회질서 확립을 위해 애쓰는 경찰관에게 깊은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는 날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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