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충남도청과의 유별, 송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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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크]충남도청과의 유별, 송별

최충식 논설실장

  • 승인 2012-10-21 12:02
  • 신문게재 2012-10-22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문화에 따른 언어의 정교화가 잘 나타난 예를 들라면 '비'와 '이별'을 꼽을 것이다. 숫자를 좋아하는 오늘날은 강수량만 주로 따진다. 채찍처럼 따끔한 채찍비는 거의 잊혀지고 있다. 밤에 살짝 오는 도둑비는 지금도 내린다. 한두 방울 성글게 시작되는 비를 비꽃이라 한다. 복비, 약비도 있다. 계절감도 담는다. 가을비는 추수한 곡물로 떡 해먹는 떡비가 됐다. 봄비 오면 바빠지니 일비, 여름비는 낮잠 자기 좋아 잠비, 농한기 겨울비는 술 먹고 노는 술비였다.

기쁨 주는 비는 희우(喜雨), 가뭄 끝 단비는 감우(甘雨)가 됐다. 물리적인 속성을 띤 비에 감성과 감정을 이입했다. 때맞춰 내리는 비는 시우(時雨), 호우(好雨), 적우(適雨)이며 음울한 궂은비는 음우(陰雨)가 된다. 고통스러운 비가 고우(苦雨)라면 은혜로운 비를 택우(澤雨)라 한다. 별우(別雨)는 이별의 비다.

'센티'함은 감성이 특별히 잘 세분화된 헤어짐에도 들어간다. '소매 몌' 자를 쓴 몌별(袂別)은 소맷귀 부여잡고 눈물 훔치는 이별이다. 이별에 격이 있다. 웃어른과는 봉별(奉別)이고 존경하는 분과는 배별(拜別)이다. '받들 봉(奉)', '절 배(拜)'에서 뜻이 절로 그려진다.

송별회, 송별연이라는 말은 요즘도 많이 쓴다. 한 묶음 이별도 보내는 쪽에서는 송별(送別)이고, 반대로 떠나는 쪽에는 유별(留別)이다. 고별은 이별을 알린다는 뜻이다. 같은 이별도 결별(訣別)은 안 좋은 일 등으로 관계를 '마주 삭제'하는 행위다.

서운한 감정이 고봉밥처럼 담긴 이별에 석별(惜別)이 있다. 아끼고, 아까웠기에 애석한 이별이다. 하룻밤을 자도 만리장성을 쌓는데, 하룻밤의 대가로 일생을 지불하거나 하룻밤을 희생해 일생을 얻기도 하는데, 80년 세월은 얼마나 유구한가. 대전의 모태 같은 충남도청이 훌쩍 떠나는데 방문짝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허전함이 없을 수 없다. 1932년 10월 전통도시 공주에서 신흥도시 대전으로 도청을 옮길 때는 이전 반대 횃불시위로 고별 의식을 치렀었다.

그런 도청이 홍성·예산 내포신도시로 떠난다. 19일 '대전시민과 석별의 밤' 행사에서 한 시민이 말한 “딸을 키워 시집보낸 듯”하다는 그 섭섭함이 곧 석별이다. 두 단체장은 “큰형님이 떠나는 것 같다”(염홍철 대전시장), “형제같이 지내겠다”(안희정)고 했다. 그냥 이별을 완성하는 작별 의식이 아니었다. 이날 행사 몇 시간 전 충남도청 국정감사에서 “굉장히 정치적”인 행사라며 살짝 비튼 국회의원이 있었다. 도청사 등 미완의 숙제를 못 푼 것, 떠나는 쪽에 잔치를 베풀어 작별하는 전별(餞別)이 안 된 것, 사사롭지만 기자생활 최초의 출입처가 통째로 옮겨가는 것은 못내 아쉽고 서운하다.

대전과 충남은 다시 새로운 차원의 만남을 준비해야 한다. 유구한 세월, 대전은 충남도청으로 인해 뿌리 없이 부유하지 않을 수 있었다. 연말 이사를 앞두고 미리 애틋함을 담아 유별(충남도민 입장)과 송별(대전시민 입장)을 했지만, 기약이 있다면 기다리기 쉽다. 만날 기약 없으면 기다림에 조바심이 섞인다. 한 뿌리인 대전과 충남은 기약 없이 결별하지 않았다. 분리의 서운함, 석별의 아린 감정을 잘 간직하고 '관리'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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