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신한]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최신한]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

[중도춘추]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2-10-18 14:24
  • 신문게재 2012-10-19 20면
  • 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
▲ 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
▲ 최신한 한남대 철학과 교수
국제학술대회에서 논문발표가 있어 터키의 이스탄불을 방문했다. 보스포러스 해협을 기준으로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는 곳, 중국에서 시작된 실크로드의 종착점, 동로마제국과 오스만터키의 격렬한 충돌의 현장 이스탄불. 지리적, 정치적, 종교적 경계들과 격돌의 오랜 숨결이 간직된 곳을 살펴볼 수 있었던 것은 학술대회의 성과와 더불어 여행의 귀중한 선물이었다.

이스탄불의 수많은 유적지 가운데 '아야소피아'라 불리는 사원이 있다. 이 건축물은 이스탄불이 콘스탄티노플이었을 때 지어진 성당으로서 이스탄불의 유적지 가운데 역사의 우여곡절을 가장 많이 간직한 곳이다. 기독교의 새로운 중심지가 된 콘스탄티노플과 동로마제국의 당당한 힘을 바탕으로 건립되었던 성당이 이슬람사원으로 변화한 모습은 너무나도 인상적이다. 콘스탄티노플이 이스탄불로 바뀐 것 가운데는 지배자의 교체만이 아니라 지배 민족이 숭배하는 종교의 변화도 들어 있었다. 역사의 연속성에는 정치의 변화만이 아니라 종교의 변화도 포함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슬람을 믿는 오스만터키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이후 아야소피아 성당을 파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아야소피아 성당 내부의 아름다운 종교적 상징들을 회칠하여 보이지 않게 했다 하지만 이 성당을 아예 모스크로 바꾸어 사용했다는 것은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놀라운 사실이다. 다른 종교의 건축물을 파괴하지 않고 자신의 종교를 위해 사용했다는 역사는 종교 자체가 갖는 문화적 힘을 보여준다. 아야소피아 성당에서 우리는 초월적 신앙과 현실적 삶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역사 속의 종교는 삶의 종교이며 문화로서의 종교다. 개인의 삶과 한 시대의 삶은 역사적 삶으로 이어진다. 개인의 신앙과 민족의 신앙도 역사의 변화와 함께 그곳의 문화로 남는다. 삶의 문화로 이어지지 않는 종교는 현실의 변화와 무관할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종교의 가르침과 신앙인의 삶은 아예 분리되어 있을 것이다. 종교적 교리는 원래 추상적인 것으로서 언제나 개인의 변화하는 삶을 넘어서 있다. 그러나 신앙인의 삶은 종교적 가르침을 현실 가운데 실현해야 하며 이를 통해 자신의 삶과 주변의 현실을 변화시켜야 한다. 문화로서의 종교는 이와 같은 현실의 변화에서 비로소 확인된다. 그러므로 현실의 문화로 자리 잡지 못하는 종교는 신도의 숫자나 교세와 상관없이 역사에 기여하는 바가 많지 않다.

개인이 종교적 초월을 체험함으로써 자신과 현실을 변화시키고 이로부터 새로운 삶의 문화를 형성한다는 것은 종교가 갖는 진정한 힘이다. 문화로서의 종교는 그때마다 삶의 지평을 늘 새롭게 넓혀준다. 삶에서는 낯선 것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다. 낯선 것을 배제하고 이와 대립하는 것보다 이를 인정하고 대화하며 경우에 따라 이를 수용하는 것은 평화로운 삶을 보장한다. 낯선 것이 이념이나 종교인 경우 이러한 인정과 대화는 결코 쉽지 않으며 극한 대립을 낳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낯선 것을 정신적 문화로 받아들일 때 종교와 이념은 서로 인정할 수 있다. 이러한 인정과 관용은 평화로운 공존으로 이어지며 더 나아가 양자의 이질적인 문화를 뛰어넘어 새로운 삶을 구현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유구한 역사 속에도 수많은 종교의 전승과 전통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고유한 가르침 속에서 대립하기도 했지만, 종교가 삶의 문화가 됨으로써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종교의 평화로운 공존은 낯선 종교 속에서 삶을 위한 공통의 가치를 발견할 때 가능하며, 이는 새로운 정신의 창출로 나타나기도 한다. 새로운 정신의 등장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미 주어져 있는 정신의 인정에서 시작한다. 537년에 건립된 아야소피아 성당은 이러한 종교적 대립과 인정의 역사를 웅변하고 있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