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그 직원은 돈을 내주면서 “용돈을 받으실 연세로 보이는데요”라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에 얼결에 “아! 예. 받기도 하지만, 드리기도 하지요”라고 답했다.
명절 때라서 신권을 마련해 두는 것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일 뿐이었는데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듣고 보니 '그 직원이 보기에, 이제 내 나이쯤 되면 용돈을 누구에게 드리는 입장보다는 받는 세대로 인식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언뜻 스쳐가며 '드리는 것', '받는 것'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자식들로부터 용돈이나 선물을 받는 것은 액수의 많고 적음, 가격이 얼마나 되느냐를 떠나서 부모에게 드리려는 마음가짐이 대견스럽고 또 받음이 흐뭇하면서도 한편 안쓰럽기도 하다.
아직 융자금을 갚아 나가야 하고 아이 키우는데 씀씀이가 만만치가 않은데 명절이니 생일이니 그런 때마다 챙겨야 하는 그 마음이 되어 보면 그네들은 얼마나 셈을 해보고 궁리를 했을까? 그래서 그런지 오래 전, 첫 월급을 받았다며 용돈으로 담아 준 봉투를 아직까지 쓰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다.
“선물을 사는 대신 드리는 것이라며 필요한 곳에 쓰시라”고 했지만 차마 그 힘들게 번 것을 쉽사리 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머니도 그러신다.
결혼 전, 월급을 갖다 드리면 “네 아버지가 주시는 월급봉투를 받을 때는 그렇게까지 부담스럽지가 않았는데, 네가 주는 봉투는 받을 때마다 짠하더라”라고 하셨는데, 자식으로부터 용돈이든 생활비든 받는다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고 하시며 지금도 용돈을 드리면 “너희들도 쓸데가 많을 텐데 이렇게 받아서 어떡하니?”라는 말씀을 빼놓지 않으신다.
한편 용돈을 부정기적으로 드리고 액수마저 들쑥날쑥하면 계획적인 씀씀이가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요즈음은 매월 일정한 날에 비록 적더라도 항상 같은 금액을 신권으로 봉투에 담아서 드린다는 나름의 원칙을 정해 해오고 있다.
아울러 가급적이면 아이들이 보는데서 드린다. 같은 용돈이라 할지라도 드릴 때는 '좀 더 드려야 하는데' 생각되고 자식들로부터 받을 때는 '저희들 형편도 팍팍할 텐데'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명절이나 기념이 될 만한 날에 용돈을 드려야 할지 선물을 드려야 할 것인지 망설이는 경우가 있다.
현금으로 드리면 편리하고 마음대로 쓰실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아무래도 성의가 부족한 듯하고 반면 선물을 하자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평소에 눈여겨 두었다가 때맞춰 골라야 하는 등 정성을 담을 수 있다는 의미는 있지만 사용하는 면에서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래도 선물은 물품이 귀하고 의미가 있는 날에나 마음먹고 장만하던 옛 시절과는 달리 요즈음이야 편리하게 쓸 수 있게 돈으로 드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여기고 있다.
어쨌든 지금까지는 나이를 먹었다거나 이제 나이를 먹은 사람으로서 대접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을 별로 해 본적이 없는데 은행원의 눈에 비친 것처럼 마음과는 달리 곳곳에서 노인대접을 받고 있다고 여겨지는 때가 있다.
그동안 버스나 지하철에서 학생들이 자리를 내어주면 괜찮다면서 사양을 했고 젊은이들이 앉아 있는 자리 부근에는 마치 양보해 달라는 무언의 채근으로 여길까 해서 의식적으로 떨어진 곳으로 가서 서 있곤 했는데 아마 경로석을 찾아야 하는 연령으로 보였는가 보다.
언젠가 지하철 역사에 들어서는데 안내원으로 보이는 분이 “이쪽으로 오세요”하기에 “왜요? 무슨 일인데요?”라고 물으니까 “무임승차권 발급 받는 방법을 알려드리려고요”하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아직은 조금 모자라는데요”하니까 그 안내원은 “아. 그러세요?”하며 다른 곳으로 갔다.
세월에 자연스럽게 따라 오는 외양의 변화를 무의식적으로라도 애써 외면하고 거슬러 보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한편 나이를 먹는다는 것과, 나이를 먹으면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등식(等式)의 범위는 어디까지 일까를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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