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재권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장 |
필자는 지방은행중 모범생으로 인정받고 있는 대구은행의 본거지인 대구에서 1년간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목격한 경험을 토대로 우리지역 지방은행 설립 논의 진행과정을 지켜보며 아쉽게 느꼈던 대목들을 소개해 본다.
먼저 '지방은행' 대신 '향토은행'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으면 혼선을 크게 줄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현재 사용하고 있는 '지방은행 설립'이라는 표현은 일견 지방은행을 신설한다는 의미로 다가온다. 이로 인해 은행업계의 치열한 경쟁구도에서 후발 신생 지방은행의 생존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일으켰고, 대의적인 담론 보다는 어느 정도 규모의 자본금이 적정한지, 또한 상당한 규모의 자본금을 어떻게 조달할 수 있을지 등 다소 지엽적인 논란이 촉발되었다. 이 과정에서 지역사회의 공감대를 폭넓게 획득하는데 한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공공연히 “총론에 대해서는 찬성하지만, 각론에 있어서는 생각과 입장이 다르다”는 얘기가 오가는 실정이다.
대신 우리 지역사회를 대표하고 지역 경제활동의 구심점이 되어 지역소재 기업들의 원활한 금융활동을 지원해 주는 '향토은행의 복원' 정도로 표현하였으면 쉽게 공감대가 확보되었을 것이다. 지역 경제발전의 원동력인 향토기업과 지역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향토언론이 있듯이, 지역을 대표하고 지역민들의 애정을 받으면서 지역을 위해 봉사하는 향토은행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간결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쉽게 호응과 지지를 얻을 수 있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두 번째로 문제 제기와 비전 제시가 좀 더 명확하고 분명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즉, 지방은행이 없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중소기업 대출실적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식의 문제 제기는 중소기업금융 이슈에 대한 깊은 성찰과 고민 없이 '지방은행=중소기업대출'로 지나치게 단순화한 것으로, 지방은행 부재로 인해 초래된 문제점과 불편함을 공론화하기에는 힘에 부치는 논리가 아닌가 생각된다.
앞서 소개했던 대구은행은 산하조직인 경제연구소를 통해 지역소재 중소기업에 대한 경영컨설팅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을 뿐 아니라 대표 이코노미스트를 내세워 지역사회 이슈를 선제적으로 공론화하고 세미나 개최 및 지역경제 조사연구 등 다양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고 있다.
참신성이 떨어지는 자금지원 문제 보다는, 지역 중소기업에 대한 맞춤형 경영컨설팅 서비스가 이루어지고 있지 못한 점, 지역전문가를 양성하고 지역사회의 장기발전 방향을 모색해 제시하는 지역사회의 브레인으로서의 역할이 절실히 필요한 점 등을 부각시켰으면 보다 수월한 공감대 형성이 가능하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세 번째로 처음부터 좀 더 시야를 넓혀 목표를 향토은행 복원 문제로 설정하여 접근하였으면 다양한 추진방안이 논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대부분 지방은행 신설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의견에 동의하고 있으며, 기존 은행의 사업본부를 '지주회사내 자회사 형태로 전환'하는 방안이 대안으로 선호되어 왔다. 하지만 이 방안도 과거 충청은행의 활동지였던 대전과 충남도와, 충북은행의 활동지였던 충북도의 사정이 다른 점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만약 서울에 본점을 둔 시중은행중 하나가 충청권으로 본점조직을 이전한다면 어떨까? 전국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시중은행이지만 본점이 충청권에 소재하고 지역밀착형 경영을 한다면, 지역민으로부터 지역을 대표하는 향토은행으로 인정받고 깊은 애정과 사랑을 함께 받는 동시에 향토은행 부재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런던에 본사를 두고 있는 영국계 HSBC가 홍콩으로 본사를 이전하는 방안을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있으므로, 국내에서도 여건만 맞으면 충분히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우리 충청권에는 신행정수도인 세종시도 소재하고 있으며, 과거 충청권으로 본점 이전을 공개적으로 약속했던 시중은행이 있었고, 이 은행을 흡수 통합한 시중은행이 현재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분명 쉽지 않은 과제이겠지만, 500만 충청인들이 염원과 지혜를 모아 추진한다면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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