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기환 아트팩 대표 |
교수님의 권유로 진천에 있는 종 박물관에서 주최했던 디자인 공모전의 기획과 운영을 맡았을 때의 이야기다. 생각이 빠르고 열정적인 그곳의 학예사님은 나에게 참 많은 것을 던져 주었다.
다양한 인생의 질문도, 깊이 있는 문제의 답안도 하나하나 가슴 아프게 찔러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금도 어느 누군가에게 그 세차고 당당함을 무기로 바른 소리와 새로운 무엇인가를 계획하고 계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런 이야기들 중에서 생각나는 것이 하나 있다. 당시는 미래에 관한 심각한 갈림길에서 고민에 빠져 있었고, 그런 나에게 싫지 않은 제안이 들어왔었지만, 그 계획이란 것들이 밝힐 수는 없으나 깊이 없는 나의 눈에도 의심이 가득했기 때문이었다.
그 계획의 일부를 상담하면서 특정 지역의 진화 순서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운치와 가능성이 있고, 상대적 미개발지역, 쉽게 말해 지역적 유리함을 지니고도 개발이 더딘 탓에 임대료와 유지비가 저렴한 지역에 대해 설명해 주셨다.
그 지역을 우선적으로 점령하는 것은 가난한 예술가들이며, 그 예술가들로 하여금 동네는 재미있어지고 하나 둘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그 이후로 들어서는 것들이 카페나 음식점, 그로 인해 임대료와 유지비가 올라가기 시작하면 본격적인 이른바 돈 되는 업종들이 서서히 지역을 장악하고, 예술가들은 다시 저렴한 곳을 찾아 떠난다는 순서.
대표적인 예로 홍대를 떠나는 예술가들과 그들로 인해 새로이 형성된 문래동 예술 공단. 최근에 가본 기억에 의하면 그곳도 어쩜 저 순서에 따라 이런저런 나름의 이유를 댄 카페들이 들어서고 있었다.
우리가 있는 대흥동은 어느 정도에 와있을까. 어느 정도에 서 있는가. 보다 당장의 안타까움으로 손에 힘이 들어간다.
대전여중 옆 골목, 늘 내가 이용하는 주차공간이다. 우리가 이곳에 온 지 이제 1년 4개월 동안, 1주일에 적어도 4일 이상 신세를 지는 이 골목에서 그 짧은 기간에 몇 개의 원룸건물이 올라갔는지 이제 와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건축기술에 감탄이 나온다. 그럴 리 없을 것 같던 '청청현'도 아무 일 없던 듯이 무너지고, 비 오는 날이면 꼭 들러서 커피를 마셨던 '끝'도 사라졌다.
세련된 원룸건물들이 그 자리를 깔끔하게 정리하고 있고, 또 몇 개의 카페들이 여기저기에 새로이 자리 잡았다.
이런저런 다양한 이유와 목표가 있겠지만, 끈질기고 자부심에 고생하시는 여러분들 덕에 득을 보는 다양한 모양의 장사다. 은행동을 인근에 둔덕에 오래전부터 다양한 업종들이 공유했던 지역이어서 재미있는 곳이라 여겼었지만 이제 그 여김도 오래가지 않을 것 같은 불안이 들기 시작했다.
그 다양함을 인정할만한 공간 자체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변화와 발전을 거부해야 할 대상이라 생각하고 싶지 않다.
당연한 순서라고도 생각한다.
다만, 그 과정에서 조금 더 지킬 수는 없는 것일까? 조금 더 유지할 순 없는 것일까? 리모델링이 허용되지 않는 개발의식이 너무나 아쉬울 뿐이다.
가지고 있는 장점 역시 개발의 대상이 돼버리기엔 그것이 유지하고 지켜주었던 세월이 너무나 아깝기 때문이다.
내년은 기대해도 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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