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중 지방부장(부국장) |
한글날에 몇가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 있는 것 같아 되짚어 본다. 우선 날로 심각성을 더해가는 언어폭력과 비속어, 은어 등의 사용이다. 우리나라 청소년의 언어의식과 사용실태가 날로 악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짧은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듣는 이가 민망할 정도로 욕설과 비속어가 되풀이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국립국어원이 실시한 '청소년 언어실태 언어의식 전국조사'자료에 따르면 비속어나 욕설 등 부정적인 언어 사용이 이미 청소년 사이에서는 일상화된 것으로 확인됐다. 초등학생의 97%가 '짱', '찌질이', '쩔다', '깝치다', '야리다', '존나' 등의 비속어를 사용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중고등학생 가운데 이런 비속어를 쓴 적이 있다고 답한 비율은 99%에 달했다. '안습'(안구에 습기 찰 정도로 눈물난다), '죽빵치다'(집단 구타하다), '헐'(감탄사) 등의 은어나 유행어는 초등학생의 97%, 중고등학생은 무려 100%가 써봤다고 응답했다.
우리나라 언론매체에서도 우리 글을 왜곡하는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은어나 비속어들이 제목이나 기사에 버젓이 사용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예를 들면 어느 연예인의 아름다운 허벅지 다리를 “누구누구 꿀벅지”라는 식이다. 이런 단어는 국어사전에도 없다. 말 그대로 한글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또 '까도남, 까도녀, 차도남, 차도녀'와 같은 원래의 뜻을 알 수 없는 줄임말도 사용을 자제해야 한다.
요즘 TV에도 단순한 자막의 공해가 아니라 한글 왜곡이나 변질의 수준이 도를 너무 넘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일부 부적당하거나 맞춤법에 어긋난 진행자와 출연자들의 언어가 화면에 문자로 표현돼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나쁜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특히 연예오락 방송프로그램에서 맞춤법이 틀리거나 일본식 어휘를 사용하는 경우는 너무 흔하다. 방송 중 느닷없이 튀어나온 자막에 '급(急)칭찬'이라고 하더니 잠시후엔 '킹 오브(King of) 대단'이라는 황당한 조어가 등장했다. 이런 방송 프로그램 자막은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로 그대로 전해진다. 아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휴대전화와 인터넷을 통해 전해지는 많은 비속어가 오락프로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방송사는 그런 자막을 남발한다. 길거리의 광고도 문제다. 외국의 거리인지 한국 거리인지 분간이 안가는 정도다. 심지어 서울 명동의 거리 뿐만아니라 유성구 궁동의 거리에도 온 천지가 외국어 투성이다.
한글세계화정책도 문제다. 언어는 있지만 문자가 없던 찌아찌아족은 3년전 한글을 표기문자로 사용키로 해 한글의 독창성과 우수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혔다. 하지만 지난 8월말 인도네시아 바우바우시에서 운영되던 세종학당이 철수했다. 아쉬움이 남는다. 2016년까지 세종학당을 200곳으로 늘리겠다는 정부의 계획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청소년의 언어 순화를 위해 방송의 노력이 중요하다. 방송은 특성상 사회의 생생한 언어 그대로를 반영한다 하더라도 언어예절이 실종되고 막말과 비속어가 일상화된 품격 없는 말을 오락 프로그램에서 계속 내보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적어도 청소년들이 이런 언어 환경에 노출되지 않아야 한다.
한 시인이 탈고를 여러번 하고 수십번을 다듬는 것은 아름다운 단어와 어휘를 만들기 위해서다. 그래서 탄생하는 것이 아름다운 시다. 한글날을 지내면서 우리 스스로 한글을 홀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뒤돌아봐야 한다. 거리의 간판이 외래어나 외국어로 바뀌고 인터넷에서 국적을 알 수 없는 이상한 글과 문자가 난무하고 있다. 한글을 소중히 여기면서 격을 높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가수 싸이는 '강남스타일'을 가지고 세계를 평정했다. 이번엔 '한글스타일'로 한글의 우수성을 세계에 각인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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