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천장사 들머리에서 본 연암산, 오른쪽은 하산길 임도에서 본 삼준산. |
삼준산-서산시 고북면,예산군 갈산면
서산과 예산의 산들에서는 조망이 좋다. 높은 산이 없고 내포의 넓은 들이 있으며 바다가 가까이 있기 때문이다. 가야산 줄기가 동쪽을 가리고 있지만 북쪽과 남쪽 그리고 서쪽은 터져있다.
천수만, 간월호, 안면도, 태안, 서산이 보이고 넓은 서산의 들이 앞에 펼쳐져 있다. 또 오서산과 예산 일대의 산이 보이며 당진의 서쪽 자락도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태안 서산 너머 서해의 조망이 매우 좋다.
연암산과 삼준산 줄기는 장요리(서산시 고북면)를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퍼져 있다. 북쪽 끝에 연암산 남쪽 끝에 삼준산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다. 이 두 산은 모두 숲이 짙고 우람한 바위도 있다. 그 바위지대는 모두 서쪽을 향해 높은 벼랑을 이루고 있어 장쾌하다.
연암산(燕岩山)의 '연암'은 '제비바위'를 뜻한다. 그 제비바위 일대는 장관이다. 서쪽으로 깎아지른 벼랑이 층을 이루며 위로 길게 이어져 있다. 벼랑 위는 반석으로 되어 있어 쉬기 좋고 서쪽을 조망하기에도 매우 좋다.
풍수지리설에서 연암산은 제비가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라 한다. 제비바위가 있고 천장사가 제비 알이 들어있는 제비집 자리라고 한다. 큰 명당이기 때문인지 2000년 큰 산불에 주위가 모두 탔으나 천장사에는 불이 들지 않았다. 지금도 천장사 주위 불탄 자리에는 큰 나무들이 없어 산불 흔적을 분명히 알아볼 수 있다.
삼준산 고스락 남쪽의 바위등성이도 볼 만하다. 기암괴봉으로 이루어진 등성이가 소나무와 어우러져 있어 아름답다. 삼준산의 주봉이 삼각으로 뾰족하게 솟아 있는 것은 이 산이 바위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온 산에 드문드문 바위가 숨어 있는 것이다.
경허 스님과 천장사 그리고 연암산=경허 성우(鏡虛 惺牛)스님은 우리 나라 선불교의 맥을 이은 대선사다.
경허 스님은 계룡산 동학사에서 '중이 공부를 안 하면 소가 되어 평생 일을 해야 한다', '소가 되어도 코뚜레를 뚫을 콧구멍이 없으면 되지' 하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고 문득 깨달았다 한다.
견성(見性:문득 천성을 깨달음)을 한 뒤 천장사에서 참선을 하며 오후보임(悟後保任-견성 뒤 성불을 위한 수도)을 하여 성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때 연암산의 천장사에는 스님의 어머니와 형님이 함께 있었으며 경허 스님이 정진에 들었던 곳이 천장사의 한 간 집 원구문(圓求門)이다.
'홀연히 소에 콧구멍 없다는 말을 듣고 문득 삼천 대천 세계가 내 집임을 깨달았네 유월 연암산 아래 들 사람, 일 없이 태평가를 부르노라' 라는 오도송을 남겼다.
경허 스님의 문하에는 세 달(월)이 있었다.천진불로 알려진 혜월(慧月) 스님은 경허 스님에게서 수심결을 배웠고, 수월(水月)스님은 늘 짚신을 삼아 남에게 보시하며 땔감을 대는 부목 노릇을 했고, 막내 만공 월면(滿空 月面)스님은 경허스님을 모시는 시봉역할을 했다 한다.
경허 스님은 어린 만공을 데리고 자주 제비바위에 올라 툭 터진 서천을 향하고 앉아 참선을 했다 한다.
만공 스님은 뒤에 수덕사에 주석하면서 우리 불교를 지키며 비구의 법통을 이어가는 데 힘을 썼다. 백야 만해 등과도 교류하며 광복에도 많은 관심을 가졌고 견성암을 세워 비구니도 양성했다.
경허 스님의 기행도 유명하다. 천장사 첫 법회에서 친어머니가 있는데도 알몸으로 나와 설법을 하는가 하면 여자 나병환자가 불쌍하다고 데리고 자기도 했다는 것이다.
경허 스님과 탁월한 세 달의 제자 혜월, 수월, 만공 월면 스님이 수도한 천장사는 명찰임에 틀림 없다. 명산대찰(名山大刹)이라는 말이 있지만 명산에 이름난 절이 있다는 명산명찰(名山名刹)이라는 말도 그럴 듯하다.
※참고-경허 스님의 이야기는 '천년산행'(박원식 지음)에서 읽은 내용이다.
장요리에서 시작하여 장요리에서 끝낸 원점 회귀산행=연암산과 삼준산 줄기는 장요리를 중심으로 부챗살처럼 퍼져있다. 따라서 두 산의 산행은 장요리(서산시 고북면)에서 시작하여 장요리에서 끝내게 된다.
천장사는 경허 스님의 명성에 비해 작고 초라한 절이었다. 길은 천장사 위로 이어졌다. 제비바위에 오르는 길은 몇 년 전의 큰 불로 큰 나무가 없고 풀과 관목 사이로 나있어서 주위가 잘 보였다.
제비바위는 그야말로 명소였다. 바위벼랑 위의 넓은 반석이 우선 시원했고 앞이 툭 터진 조망도 시원했다. 여기에서 경허스님은 어린 만공 스님을 데리고 와 자주 참선을 했다 한다.
제비바위에서 고스락까지도 계속 왼편이 절벽인 바위지대였다. 고스락은 오른편이 절벽으로 되어있는 바위 무더기였다. 서산 일대와 가야산 일대도 잘 보였다.
연암산에서 삼준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로 내려서는 비탈은 매우 가팔랐으나 내려서고 나니 편안한 길이 이어졌다. 왼편으로 계속 천장사가 내려다 보였다.
고북면에서 해미면으로 넘어가는 연장이 고개와 무너미 고개를 연이어 지났다. 무너미 고개를 지나 삼준산으로 오르는 길은 갑자기 가팔라지고 숲이 울창해 힘이 들고 멀리 내다볼 수도 없었다.
숲속으로 거의 한 시간을 넘게 오르자 느닷없이 조망이 트이며 바위로 된 삼준산 고스락이 나타났다. 여기 바위들은 남쪽 바위등성이로 이어진다. 가까이에 덕숭산과 가야산이 보이고 넓은 서산의 들이 보여 시원했다.
하산은 올라왔던 길을 되 내려가다 왼편(서쪽)으로 내려서는 길로 조금만 내려가면 임도를 만난다.
골짜기에 숨어있는 화계사에서 들려오는 염불소리를 들으며 계속 임도를 따라 내려갔더니 우리가 산행을 시작한 천장사 들머리가 나타났다. 네 시간의 산행이었다.
▲김홍주 산행문화연구소장 |
1932년 금산 출생. 42년간 교단에 서오다 1997년 퇴직한 뒤 산행문화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산행을 주제로 한 저술활동으로 '한밭 그 언저리의 산들', '한국 51 명산록', '조망의 즐거움', '산행문화와 웰빙 라이프' 등을 출간했다.
▲챙겨보기
▲제비바위 |
여기에 노송과도 어우러져 매우 아름답다. 특히 제비바위는 넓은 반석으로 되어 있어 시원하고 쉬기에 좋다. 서쪽으로 넓은 서산 일대가 조망되어 제비바위에 서면 저마다 탄성을 내지른다.
천장사는 초라하지만 대선사 경허 스님이 도를 깨우친 불교의 성지로 연암산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산행길잡이
산길=연암산과 삼준산을 오르려면 장요리가 거점이 된다. 둘 중 하나의 산만을 오를 경우에는 연암산과 삼준산 중간에, 임도가 넘어가는 무너미 고개를 이용하면 된다. 다른 길로 연암산이나 삼준산을 오르는 길이 있으나 찾기가 어렵고 잘 이용되지 않고 있다.
천장사 들머리~천장사~제비바위~연암산 주봉~무너미고개~벽장바위~405m봉~갯골재-삼준산 주봉~갯골재~임도~화계사 들머리~천장사 들머리. 또는 그 역순이다.
교통=서해안고속도로가 연암산 삼준산 아래를 지나고 있다. 서울 쪽에는 해미나들목이 있고 홍성 쪽에는 갈산에 홍성 나들목이 있다.연암산 삼준산에 가려면 먼저 해미나 갈산(또는 홍성)을 찾아가야 한다. 29번 국도도 해미와 갈산을 잇고 있다. 해미 갈산 중간 쯤에 고북(서산시 고북면)이 있고 고북에서 장요리로 들어간다. 해미에서 하루 7회 시내버스가 장요리를 드나든다.
조망 (삼준산에서)
북→일락산, 석문봉, 가야산, 덕숭산, 원효봉, 금오산, 도고산, 관모봉, 안락산, 천방산.
동→용봉산, 극정봉, 국사봉, 무성산, 봉수산, 국사봉, 법산, 칠갑산, 오봉산, 백월산, 오서산, 성주산, 만수산, 아미산, 옥마산, 진대산.
남→안면도, 서해.
서→도비산, 백화산, 팔봉산, 연암산.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