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죽음과 죽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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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토크]'죽음과 죽어감'

<최충식의 문화토크>

  • 승인 2012-10-07 12:31
  • 신문게재 2012-10-08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교수님 그림 걸려고 벽에 처음 못질했어요.”
 “못을 왜 안 박으세요?”
 “벽이 아프잖아요.… 누드화 걸어보긴 생전 처음입니다. 하하.”

지난주 대전미술협회장(葬)을 치르고 이승을 떠난 배재대 김치중 교수와 나눈 마지막 대화다. 김 교수는 지난 5월 이동훈미술상 심사를 마치고 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새로운 출발' 타이틀로 마지막 전시회를 연 시점은 그 직후였다. 뜻대로 안 되는 것은 인생의 넓이와 깊이만이 아니다. 길고 짧음도 조절할 수 없다. 언제 금산 지량리의 작업실에 한번 들르라는 말은 영영 빈 약속이 됐다.

약속문화의 혁명을 이뤘다는 휴대폰. 하지만 전화 한 통에 뜸들이고 망설일 때가 있다. 더 있다 가라고 잡을 건가, 잘 가라고 미리 인사할 건가. 죽음을 삶과 직결된 삶의 문제로 받아들이라고 주제넘게 충고라도 할까. 그런 '죽음 문화'에는 익숙하지 않다. 잘 보낸 일생이 안락한 죽음을 가져왔길 바라고 명복을 빌 뿐이다.

요즘 '심슨 죽음의 5단계'가 회자되고 있다. 복어를 잘못 먹어 하루 생존 판정을 받은 주인공의 부정-분노-공포-흥정-수용 과정이 안쓰럽고도 코믹하다. 호스피스의 선구자인 퀴블러 로스의 죽음을 앞둔 부정-분노-타협-우울-수용 5단계를 응용한 만화로 보인다. 이러한 단계를 거칠 시간도, 인사할 틈도 안 주고 갑자기 직면하는 죽음도 있다.

▲ 김치중 作 드로잉.
▲ 김치중 作 드로잉.
『즐거운 달리기 세상』을 쓴 김명녕 한밭대 교수는 어둑신한 새벽 산야를 달리다 호흡이 멎었다. “정신을 집중하면 별빛에도 길이 보이고 공포에 떨면 달빛에도 길이 보이지 않아요.” 죽기 전에 상재(上梓)한 그의 책을 받고 메시지 '필담'으로 서로 간결한 축하와 감사 인사를 나눈 손끝 감촉이 생생하다. 마라톤 코스를 100번 넘게 완주한 김 교수였지만, 서늘할 때 소주 한 잔 하자는 지인들과의 약속을 거슬러 총총히 먼 길로 향했다.

인연이라고는 중학 시절 영어 교과서 저자란 게 전부이나 장왕록 교수의 죽음은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는 동해안의 바다에서 청년처럼 왕성하게 수영을 즐기다 심장마비로 세상을 떴다. 그에게는 미니스커트 여성을 뚫어져라 보는 습관이 있었다. 소아마비인 딸 장영희 교수는 두 다리를 못 쓰는 딸 생각에 그랬다며 뒷날 부친에 얽힌 편견을 풀어줬다. 딸 장 교수는 “인생이 짧다느니 길다느니 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며 깊고 따사로운 글편들을 남기고 세상과 하직했다.

건강수명(일생 중 건강하게 살아가는 기간) 기준에서는 이들은 장수하지 못했다. (참고로, 전국 건강수명 평균은 71.3세, 기대수명은 78.6세다. 여성 수명이 길지만 남성보다 3년 이상 더 병치레를 한다. 대전 건강수명은 72.85세로 73.89세인 서울 다음으로 높다. 충남은 70.96세, 충북은 70.34세.) 그러나 인생의 선배들은 인생이 길이의 묶음과 엮음이 아님을 보여줬다. 어떻게 사느냐에 기준을 뒀다.

인간적인 욕심으로는 가치 있게 살며 건강수명까지 누린다면 진시황도 팽조도 안 부러울 것 같다. 불로불사(老死)의 약초를 구하던 진시황은 49세에 죽었다. 요순시대 팽조의 800세 생존설은 허구적 전설이다. 대작 『혼불』을 남기고 51세에 떠난 최명희 작가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 참 잘 살다 갑니다”라고 유언했다. 지상에서 '인간의 의무'에 충실하다 죽은 사람들은 산 사람들에게 오히려 격려와 위로가 됨을 알았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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