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7년 뉴질랜드 태생. 웰링턴의 빅토리아 대학에서 동물학과 음악을 전공한 뒤 수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하며 영화음악과 무대음악 분야에서 작곡 활동을 했다. 뉴질랜드 정부의 장학금 지원을 받아 영국에 방문하여 작곡가 레이니어(P. Rainier)를 사사한 것을 계기로 1971년부터 1986년까지 런던의 일링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현직에서 은퇴한 뒤 지금은 스페인의 휴양도시 시체스에 살면서 다양한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자신의 오랜 음악교육 체험에 입각하여 대중음악과 민속음악, 그리고 서구 고전음악을 모두 평등하게 바라보는 그의 폭넓은 이론적 시각은 영미 음악학계와 음악교육학계에 다양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2002년 월드컵이 열렸을 당시 광화문의 풍경을 기억해 보자. 수만 명의 함성과 손바닥이 만들어내는 박수 소리가 광화문과 시청 앞 도로를 꽉 채우며 울려 퍼졌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남녀노소의 국민들의 빨간 티셔츠로 상징되는 우리의 응원은 그렇게 대한민국 곳곳에서 커다란 소리를 내면서 우리의 귀와 가슴을 울렸다. 그리고 그 울림은 여전히 우리 가슴 속에 남아서 그 시절을 생각하기만 하면 우리 국민 가슴에서 '대~한민국'이라고 외치는 응원 소리가 생생히 들리는 듯하다.
얼마 전 대전문화예술의 전당에서 열린 한 음악회의 풍경을 생각해보자. 1000여 명의 청중이 자리에 앉고 음악회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나오면 이내 정적이 흐른다. 많은 연주자들이 각자 자기의 악기를 가져와 연주를 시작한다. 사람들은 숨소리 마저 아끼며 이미 죽고 없는 어느 작곡가의 작품이며 사람들은 그 선율에 귀를 기울인다.
또한 요즘 필수품이 된 스마트 폰을 생각해보자. 요란한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도 버스를 탈 때도 각종 차 소리와 소음이 가득한 거리를 걸을 때도 스마트폰에서 재생된 음원이 이어폰으로 타고 들어와 어느 젊은이의 가슴을 요동친다. 장소가 어디든 그만의 음악회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남대문 시장의 풍경으로 우리의 오감을 옮겨보자. 여기 저기 들리는 장사꾼들의 외침 소리 어느 리어카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 소리, 주인장과 큰소리로 가격을 흥정하는 아주머니 손님들의 목소리로 정신이 없다.
자 지금까지 예를 들은 네 가지 풍경 중에서 어떤 것은 음악이고 어떤 것은 음악이 아닐까? 저자는 단호히 말한다. 이 모두가 다 훌륭한 음악이라고 말이다. 너무도 다양한 환경, 다양한 종류의 행위들, 다양한 방식으로 조직된 소리들이 의미를 만들어내고 그 모든 것들이 음악으로 이름지어진다는 것이다. 저자는 온 인류가 행복을 느끼고 자신의 삶과 재능을 쏟아부은 음악이라는 존재에 대해 설명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저자의 핵심적인 주장은 '음악'이란 말을 명사가 아닌 동사로 쓰자는 것, 그리하여 '음악하다'라는 말이나 이 말의 동명사형인 '음악하기'라는 말이 폭넓게 쓰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음악 작품에 대한 지나친 관심 때문에 음악을 마치 고정된 사물처럼 파악해온 서구 근대 음악 문화에 대해 근본적인 반성을 촉구한다. 또한 연주 행위와 청취 행위를 포함하는 음악 활동 일반에 주목하면서 그러한 음악 활동이 벌어지는 사회적인 여러 관계들을 총체적으로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즉 음악은 어떠한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인간이 행동하는 여러 가지 존재에서 음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턱시도를 입고 참석하는 고급이라고 표현되는 음악회만이 인류의 음악이 아니라는 것이다.
'음악하기' 능력은 '말하기' 능력이 그렇듯이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지니는 능력이다. 이러한 '천부적 능력'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대중매체나 사회적 권력을 가진 이들은 '음악하기'가 마치 재능 있는 소수의 전문인에 의해서만 이뤄질 수 있는 행위로 몰아가며 자본주의 시장의 값비싼 상품으로 전락 시켰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공동체적 삶 속에서 직접적으로 행해지고 향수되던 음악이 산업화된 사회의 요구에 의해 삶에서 이탈하여 '구경거리'로 전락한 것이다. 우리가 '음악하기'의 정당한 권리를 되찾는 것은 왜곡된 음악 행위의 실체를 바로잡고 '나'와 '우리'의 존재의미를 되찾는 작업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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