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용 대전성룡초 교감 |
문제는 여행 날짜였다. 5남매가 고민하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시던 아버지께서 추석 명절 연휴 기간이 어떠냐고 제안하셨다. 모두 놀랐다. 귀를 의심했다. 1년에 8번이나 제사를 모실 뿐만 아니라 비가 쏟아져도 성묘만큼은 꼭 가라고 성화하시던 분의 말씀이라곤 믿을 수가 없었다.
아버지의 결단에 가족여행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여행지는 2박 3일 연휴에 맞춰 대마도로 결정했다. 국내의 경우 추석이라 숙식 해결이 곤란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 가족의 직업도 한몫했다. 6명이 교직에 있고, 손주 대부분이 학생이라 우리나라 역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대마도가 최적이었다.
그런데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여행 계획을 추진하던 중에 갑작스럽게 아버지께 폐암 진단이 떨어졌다. 놀랍고 황망한 중에도 5남매는 언제나 그랬듯이 역할을 분담하여 바삐 움직였다. 어느 병원의 레지던트로 있는 제자가 폐암 전문의를 추천해 주었고, 다행히 아버지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당초 계획 했던 해외여행은 취소하기로 했다. 폐색증과 천식으로 중환자실에 입원했다가 퇴원하신 어머니는 회복기에 접어들어 문제가 없었지만, 갑작스럽게 폐암 진단을 받고 15일 전에 수술하신 아버지는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칫해 병이 더 악화되지 않을까 염려되었다. 아버지께 가족여행을 다음에 추진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어제도 버스 타고 논산 시내에 다녀왔다. 괜찮다!”며 그럴 필요없다고 하셨다. 하는 수 없어 친분 있는 여행사 임원에게 사정을 말하니, 우리만을 위한 여행 상품을 구성해 주었다.
우리는 여행 목적을 관광이 아닌 부모님 요양으로 변경했다. 대마도에 갈 때에도 편안한 승선감을 준다는 여객선 '코비호'로 변경했다. 현지에서도 가이드의 양해를 얻어 여유 있게 움직였다. 우리 가족만의 단독 상품이라 가능했다.
고비도 있었다. 첫째 날에 부모님은 밤 12시 넘은 시각에 부산까지 기차로 4시간, 대마도까지 코비호로 2시간을 타신 탓에 무척 피곤해 하셨다. 대마도에서 관광버스에 오르시기만 하면 곤하게 주무셨다. 괜한 짓을 했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둘째 날 새벽 4시쯤, 부모님이 계신 방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궁금해 찾아뵈었더니 피곤이 풀리셨다며 기분이 좋다고 하셨다. 그 후로 부모님께서는 밥알 하나 남기지 않으실 정도로 식사를 잘하셨다. 손자들의 재롱에 웃음꽃이 활짝 피셨다.
평소 붐빈다는 여행지마다 관광객이 없어 전세 낸 것처럼 2박 3일을 여유 있게 보내고 나니, 가족들은 76세인 부모님의 화색이 더욱더 좋아지셨다며 기뻐했다. 부모님께서는 대마도의 맑고 깨끗한 공기도 좋았지만, 자식들이 함께해서 더욱더 흐뭇하다고 하셨다. 출발하기 전에 우려했던 태풍도 일본 본토만 휩쓸고 지나갔다. 대마도가 우리나라에서 49.5㎞, 일본 규슈에서 147㎞ 떨어져 있어서, 일본보다는 우리나라 날씨와 비슷한 덕분이었다.
우리 가족을 안내하느라, 명절에 가족과 함께하지 못한 가이드에게 미안하다고 했더니, 되레 자기를 가족처럼 배려해 주어 아주 고마웠다고 했다. 행복한 대마도여행을 마치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KTX 안에서, 어머니는 아들과 며느리에게 “여기 좀 봐라. 사흘간 손에 흙과 물을 묻히지 않았더니 내 손이 참 고와졌구나!”라며 소나무 껍질처럼 거친 손등을 연신 문지르시면서 자랑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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