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덕기 편집부국장 |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사람에 대한 이해와 통찰력을 제공해 주는 문학, 역사, 철학 등의 학문을 일컫는다. 수천 년의 인류역사와 함께 내려온 지혜의 보고로서 상상력과 창의력을 샘솟게 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이같은 역할에도 불구하고 인문학이 처한 현실은 비참하기 그지없다. 대학이 취업준비를 위한 기관으로 전락하면서 취업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인문학은 비인기 학문으로 전락했고 인문학자들은 더이상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인문학 추락에는 정부 책임도 크다. 재정지원 등을 위한 정부평가 기준은 재학생충원율(30%), 취업률(20%) 등에 높은 가중치를 두고 있다. 그렇다보니 대학마다 학생 모집과 취업에 목을 메고 있다. 대학은 자체적으로 구조조정을 시도할 때 상대적으로 재학생 충원율과 취업률이 떨어지는 인문학과를 통폐합 우선 대상으로 정해 없애거나 줄여가고 있다. 대학입장에선 학생모집과 취업률에서 저조한 인문학과를 내쳐야 하는 막다른 상황에 몰렸다. 학문에 기초를 두고 앞서가는 정보를 제공해야 하는 대학이 모든 학문의 기초인 인문학을 경시하는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요즘은 대학 교수들도 정부의 재정지원 평가에서 소속대학이 좋은 점수를 받도록 하기 위해 학교방침을 잘 따라주고 받쳐줘야만 밥줄을 유지할 수 있는 세상이다. 당연히 학생모집과 제자를 취업시키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 할 수 없다.
필자는 최근 대전의 모 사립대 총장실에서 과거에 보기힘든 장면을 목격했다. 총장이 학과별 취업현황표를 비치해 놓고 매일 체크하며 학생 취업을 독려하고 있었다. 학문연구의 전당인 대학에서 판매업체 영업장에 걸려있는 일일 매출현황표를 보는 것 같아 기분이 묘해짐을 느꼈다. 총장이나 교수들의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던 차에 최근 지역의 모 사립대학에선 인문학과 교수가 자살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자살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교수직 수행에 따른 스트레스가 한 원인이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제기됐다. 우리나라 대학이 안고 있는 교육환경 문제를 노출시켰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대학의 현실, 특히 인문학의 현실은 '인문학의 위기'로 연결된다. 인문학의 위기라는 담론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같은 상황에 대해선 인문학계도 시대의 변화에 적극 대처하지 못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인문학의 위기는 교수들의 위기이자 아카데미 권력구조의 위기이지 학문의 위기는 아니라고 진단한다. 인문학 위기는 인문대학 지망생들의 감소에 따른 인문대학 교수들의 존재론적 위기라는 얘기다. 내부의 봉건적 권력과 연줄문화에 포박돼 있었는 지 자성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렇다고 인문학이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사회 각 분야에서 인문학의 중요성에 눈뜨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살인, 강간, 강도 등 사회적 흉악범죄가 기승을 부리면서 인간과 세상에 대해 묻고 답하는 학문, 곧 삶의 학문인 인문학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를 주제로 한 인문책자는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기업체의 임직원 세미나와 백화점 문화센터, 공공기관, 지자체의 시민대상 프로그램에는 인문학 강좌가 경쟁하듯 개설되고 있다. 국내 굴지의 재벌총수인 허창수 GS그룹 회장은 어려운 시기에 인문학에서 경영을 찾는 인문학 경영을 강조하고 있다. 허 회장은 “차별화를 위해서는 인문학을 통한 인간에 대한 이해가 핵심”이라고 말한다. 또 입사지원자들의 빛좋은 스펙에 질린 기업들은 전공과 상관없이 본인의 재능과 역량을 증명할 수 있는 에세이와 작품집 등 인문학을 활용한 채용방식을 도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경제적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하는 신자유주의 사회에서 인문학이 위기에 처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인문학은 인간사회의 근간이다. 인문학의 위기는 윤리의식의 부재, 이기주의, 우울증 등 인간사회의 위기와 직결된다. 대학안에선 사라져가는 인문학이 바깥에선 열풍인 상호 모순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이유를 깊이 따져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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