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엔디컷 우송대 총장 |
한국에서 60년대를 바라보는 입장과는 사뭇 다른데, 당시 미국 학생들은 1962년 10월 즈음을 '몸을 숙이고 숨는' 시대로 기억합니다. 그 때는 쿠바에 소련의 핵미사일을 배치하는 문제로 미국과 소련 간에 핵전쟁에 직면한 상황이었고, 미국 학생들은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책상 밑에서 머리와 눈을 가리는 연습을 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미국과 소련 간 대립이 최고조였던 시기였고, 존 포스터 덜레스 전 국무장관은 '소련이 자연계의 질서를 무시했고 미국은 그것을 응징하기 위해 신의 선택을 받은 것'이라고 외치며 소련을 비난한 지 겨우 10여년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다소 강한 발언이었지만, 당시의 극심한 이념 갈등을 잘 반영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50주년을 기념해 세인들이 관심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핵확산금지 회담의 주최 측은 소련과 미국에서 그 시기를 겪었던 두 인물을 주목했습니다. 소련 측을 대변할 에신 장군은 당시 미국이 핵무기를 포획하기 위해 쿠바를 침범한 경우를 대비해 단거리 핵미사일 방위를 담당하던 젊은 대위였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시 네브래스카 오마하에 위치한 미국 전략공군사령부의 지하 벙커에서 핵전쟁을 계획하고 주요 표적들이 포함되었는지를 확인하는 업무를 담당했던 공군 대위로서 미국 측을 대변하게 되었습니다.
의장의 소개로 먼저 등장한 에신 장군은 그의 부대가 어떤 지시를 받았고 비밀리에 광활한 대양을 가로질러 쿠바에 도착했으며 전쟁에 대비해 미사일을 조립하고 준비했던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였습니다. 청중들은 그 이야기에 홀린 듯 귀 기울였습니다.
그리고 회담의 사회자는 나에게 미국이 유럽에 미사일을 보유한 이유로 소련도 그들의 핵무기 보유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것에 대하여 미국 측 견해를 이야기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에신 장군은 과거 소련 측의 대응이 당연한 것이며, 1세기 동안 유지해 온 러시아의 태평양 진출과 라틴 아메리카에 유럽의 간섭을 방지하는 먼로주의(Monroe Doctrine)에 러시아 부대가 미칠 수 있었던 영향 때문에 아쉬워하는 듯 보였습니다.
이야기가 계속되면서, 저는 어떻게 미국과 미국 전략공군사령부가 소련 문제에 대응하였는지 설명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의 대국민 방송 연설 직후 미국 측 사령관 토마스 파워 장군은 미국 전략공군사령부를 전투준비태세 2단계로 지시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은 소련이 쿠바에서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미국은 소련을 침공하겠다고 경고했고, 자칫하면 판단착오로 일어날 수 있었던 핵전쟁 발발 극한 상황에 대해 청중들은 좌불안석이었습니다.
쿠바 미사일 위기 사건에 대해 아시는 분들은 당시 얼마나 긴장감이 고조됐었는지 아실 겁니다. 에신 장군은 물론 나 자신조차도 그 당시에는 우리가 각자 소속된 곳의 단편적인 부분만을 볼 수 있었던 우물 안의 개구리나 마찬가지였지만요.
결국, 소련과 미국 양측 모두 미사일 철거에 동의하고, 이 사건 이후로 핵확산 금지가 시행된 지 50주년을 맞는 평화로운 사회가 되었음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이번 회담으로 한 때 적군이었던 사람을 만났던 경험은 결코 잊지 못할 것입니다.
에신 장군과 내가 지난 20년 동안 핵무기의 위험을 낮추고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해 노력했다는 사실이 놀라울 뿐입니다.
우리는 지난 7일까지 서로 대면한 적이 없었을 뿐 비슷한 일을 하고 있었던 겁니다. 한때는 상대국에 핵무기를 겨누던 일을 하던 두 사람이 핵 확산 금지를 통한 평화를 위해 또 열심히 뛰었다는 사실 말이죠. 두 퇴역 장교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습니다.
시대마다 추구해야 할 사명은 다릅니다. 나와 에신 장군에게 남은 사명이 있다면 풍성한 경험으로 얻은 이야기를 후손들에게 들려주며 용기를 불어넣어 주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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