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미영 당진 원당초 교사 |
독서만큼 재미있고 즐거운 공부시간은 없다. 아이들과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소개하는 시간. 자신 이외의 세상을 자기 말로 바꾸어 타인에게 공감을 얻도록 하는 대상화의 기초다. 친구들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간추리는 작업이 1학년에게는 여간 만만치 않다.
한 아이가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 대부분 아는 이야기는 중간 중간 끼어드는 아이들이 많다. 소개하는 아이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경우, 또는 사건이 차례에 맞지 않게 이야기할 경우 아이들은 서로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참견을 한다.
“야, 그거 아니잖아. 나무꾼이 사슴을 쫓아간 거지.” “아니거든. 사슴은 선녀가 목욕하는 곳 알려주기만 했거든.”
책의 제목부터 나무꾼과 선녀가 맞는다는 둥, 선녀와 나무꾼이 맞는다는 둥 의견이 분분한 책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판사마다 책의 제목이 다르다. 내용도 조금씩 각색이 되어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똑같지만, 책의 일부를 텍스트로 한 책이나 내용을 간략하게 줄인 책, 내용 일부를 재미를 위해 변경시킨 책을 읽었던 아이들은 그만큼 빠진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얘들아, 선녀가 계곡에서 목욕할 때 옷을 입고 했을까?”
“아니요. 어떻게 옷을 입고 목욕을 할 수가 있어요.”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다. 그렇지만, 선녀가 알몸으로 목욕하고 있는데 나무꾼이 옷을 훔쳤다면 선녀는 무엇을 입고 나무꾼을 따라갔을까요? “얘들아, 그럼 선녀는 발가벗고 나무꾼을 따라갔을까?”
일부의 아이들은 “어휴!”하면서 부끄러워하고, 또 일부는 곰곰 생각한다. “혹시 속옷을 입지 않았을까요?”, “나무꾼이 옷을 벗어주었을 것 같아.” “하늘에서 옷을 내려주었을 것 같아요”
별의별 대답이 다 나온다. 나무꾼이 날개옷을 주었다면 하늘로 올라갔을 테니 분명히 알몸인 것은 맞는데….
“선생님, 어두우니까 깜깜해서 그냥 따라갔을 것 같아요.”, “맞아. 맞아. 어두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그럼, 선녀들이 목욕하는 계곡은 깜깜한데 옷이 어디 있는지 알고 나무꾼은 선녀 옷을 훔쳤을까?”
순간 생각하느라 조용한 아이들의 모습이 참 귀엽다.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눈빛에서 오만볼트 전류라도 흘러나올 것 같이 후끈하다.
“야광이요. 야광”이라 외치는 아이부터 “보름달이 뜬 밤이라 보였겠지”, “사슴이 알려주었을 거예요” 등 인문학적, 과학적, 현상학적의 초보적인 답들이 교실에 난무한다.
책을 읽고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아이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의 반경을 넓혀주는 일, 책의 감동과 재미를 두 배로 느끼고 다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간접경험도 큰 선물이다. 아무 생각없이 책을 읽기만 했던 아이들도 같이 참여하면서 웃고 집중하며 또 다른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인다. 금방 다른 이야기로 변형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원작보다 훨씬 재미있고 창의가 돋보이는 이야기로 말이다. 1학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말랑말랑한 감성과 촉촉한 상상력 속에 있으면 선생님은 몇 배로 더 즐겁다.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치며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일, 과연 돈 주고 얻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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