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영]1학년 담임이라 행복해요

  • 오피니언
  • 사외칼럼

[박미영]1학년 담임이라 행복해요

[교육단상]박미영 당진 원당초 교사

  • 승인 2012-09-25 14:13
  • 신문게재 2012-09-26 20면
  • 박미영 당진 원당초 교사박미영 당진 원당초 교사
▲ 박미영 당진 원당초 교사
▲ 박미영 당진 원당초 교사
1학년을 내리 3년째 담당하고 있다. 유치원을 건너온 초등학교 새내기들과의 하루하루는 아슬아슬, 좌충우돌, 정신없는 분주함의 연속이다. 그렇지만, 가르치는 대로 흡수하고 알려주는 대로 정직하게 반응하는 리트머스 같아서 날마다 안구정화와 영혼순화의 기쁨을 덤으로 얻는다.

독서만큼 재미있고 즐거운 공부시간은 없다. 아이들과 같이 책을 읽고 이야기를 소개하는 시간. 자신 이외의 세상을 자기 말로 바꾸어 타인에게 공감을 얻도록 하는 대상화의 기초다. 친구들이 이해하기 쉬우면서도 재미있게 이야기를 간추리는 작업이 1학년에게는 여간 만만치 않다.

한 아이가 '선녀와 나무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이들 대부분 아는 이야기는 중간 중간 끼어드는 아이들이 많다. 소개하는 아이가 잘못 기억하고 있을 경우, 또는 사건이 차례에 맞지 않게 이야기할 경우 아이들은 서로 정답을 알고 있다는 듯이 참견을 한다.

“야, 그거 아니잖아. 나무꾼이 사슴을 쫓아간 거지.” “아니거든. 사슴은 선녀가 목욕하는 곳 알려주기만 했거든.”

책의 제목부터 나무꾼과 선녀가 맞는다는 둥, 선녀와 나무꾼이 맞는다는 둥 의견이 분분한 책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출판사마다 책의 제목이 다르다. 내용도 조금씩 각색이 되어 있다. 전체적인 줄거리는 똑같지만, 책의 일부를 텍스트로 한 책이나 내용을 간략하게 줄인 책, 내용 일부를 재미를 위해 변경시킨 책을 읽었던 아이들은 그만큼 빠진 부분이 있을 수 있다. 갑자기 장난기가 발동한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얘들아, 선녀가 계곡에서 목욕할 때 옷을 입고 했을까?”

“아니요. 어떻게 옷을 입고 목욕을 할 수가 있어요.”

너무 당연한 질문을 했다. 그렇지만, 선녀가 알몸으로 목욕하고 있는데 나무꾼이 옷을 훔쳤다면 선녀는 무엇을 입고 나무꾼을 따라갔을까요? “얘들아, 그럼 선녀는 발가벗고 나무꾼을 따라갔을까?”

일부의 아이들은 “어휴!”하면서 부끄러워하고, 또 일부는 곰곰 생각한다. “혹시 속옷을 입지 않았을까요?”, “나무꾼이 옷을 벗어주었을 것 같아.” “하늘에서 옷을 내려주었을 것 같아요”

별의별 대답이 다 나온다. 나무꾼이 날개옷을 주었다면 하늘로 올라갔을 테니 분명히 알몸인 것은 맞는데….

“선생님, 어두우니까 깜깜해서 그냥 따라갔을 것 같아요.”, “맞아. 맞아. 어두우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

“그럼, 선녀들이 목욕하는 계곡은 깜깜한데 옷이 어디 있는지 알고 나무꾼은 선녀 옷을 훔쳤을까?”

순간 생각하느라 조용한 아이들의 모습이 참 귀엽다. 정답을 찾아내기 위해 상상력을 발동시키는 눈빛에서 오만볼트 전류라도 흘러나올 것 같이 후끈하다.

“야광이요. 야광”이라 외치는 아이부터 “보름달이 뜬 밤이라 보였겠지”, “사슴이 알려주었을 거예요” 등 인문학적, 과학적, 현상학적의 초보적인 답들이 교실에 난무한다.

책을 읽고 질문하고 대답하면서 아이들의 사고력과 창의력의 반경을 넓혀주는 일, 책의 감동과 재미를 두 배로 느끼고 다른 사람을 더 깊이 이해하는 간접경험도 큰 선물이다. 아무 생각없이 책을 읽기만 했던 아이들도 같이 참여하면서 웃고 집중하며 또 다른 상상의 날개를 펼쳐보인다. 금방 다른 이야기로 변형되어 새로운 이야기로 만들어지기도 한다. 원작보다 훨씬 재미있고 창의가 돋보이는 이야기로 말이다. 1학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말랑말랑한 감성과 촉촉한 상상력 속에 있으면 선생님은 몇 배로 더 즐겁다. 순수하고 맑은 아이들의 생각 속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깨우치며 행복한 느낌을 경험하는 일, 과연 돈 주고 얻을 수 있을까.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기고] 대전의 심장 3대 하천, 관광 수상스포츠 도시로
  2. 대전 유성 장대B구역 재개발 정비사업 '순항'
  3. 매출의 탑 로쏘㈜, ㈜디앤티 등 17개 기업 시상
  4. 국정 후반기 첫 민생토론회 위해 공주 찾은 윤석열 대통령
  5. 소진공, 2024 하반기 신입직원 31명 임용식
  1. 세종충남대학교병원, 세종권역 희귀질환전문기관 심포지엄 성료
  2.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
  3. 정관장 'GLPro' 출시 한 달 만에 2만세트 판매고
  4. 한밭새마을금고, 'MG희망나눔 사랑의 김장 나누기' 행사 진행
  5. 대전 여행업계, 명절 특수에 중국 무비자 정책까지 기대감 한껏

헤드라인 뉴스


문턱 낮아지는 정부 규제… 대전 미술관 추진동력 기대

문턱 낮아지는 정부 규제… 대전 미술관 추진동력 기대

국·공립 미술관과 박물관에 대한 행정절차가 완화되면서 대전시의 굵직한 사업들이 추진력을 얻을지 주목된다.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 사전평가 사무를 중앙정부가 아닌 지자체로 이양되지만, 여전히 정부의 권한이 강해 지자체의 자율성 강화 취지에 어긋날 수 있다는 우려 목소리가 나온다. 3일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최근 신규 설립에 대한 사전평가 사무를 지자체로 이양하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개정안이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 의결됐다. 개정안은 이달 법사위와 본회의를 거쳐 최종 통과될 전망이다. 그동안 국가 기능의 지방 이양을 추진하면서..

대기업 10곳 중 7곳 "내년 투자계획 없거나 미정"
대기업 10곳 중 7곳 "내년 투자계획 없거나 미정"

대기업 10곳 중 7곳이 내년 투자 계획이 없거나 아직 수립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내수시장 위축 및 글로벌 경기 둔화 등 대내외 경제 상황을 부정적으로 전망했기 때문이다. 투자 계획을 수립한 기업들도 투자를 줄이겠다는 응답이 많아 내년 국내 투자가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제인협회가 여론조사기관 모노리서치에 의뢰해 매출액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5년 기업 투자계획 조사' 결과, '내년도 투자계획을 아직 수립하지 못했다'는 기업이 56.6%, '투자계획이 없다'는 기업은 11.4%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해..

로봇·센서로 방사성핵종 분리한다… 원자력연 세계 최초 개발
로봇·센서로 방사성핵종 분리한다… 원자력연 세계 최초 개발

한국원자력연구원(이하 원자력연) 연구진이 방사성폐기물 안전 처분을 위한 신개념 방사성핵종 분리 장치를 개발했다. 세계 최초로 로봇과 센서를 활용해 핵종을 분리하는 기술로 빠르고 효율적인 분석이 가능하다. 원자력연은 선진핵주기기술개발부 이종광 박사팀이 신개념 분리 장치를 개발했다고 3일 밝혔다. 방사성폐기물을 처분할 땐 방사성핵종 분석을 필수로 진행하는데, 분석은 다시 전처리·분리·계측 과정으로 나뉜다. 이종광 박사팀은 분석 단계 중 분리 장치를 개발했다. 핵종 분리는 방사성폐기물을 녹인 시료에 특정 핵종과 반응하는 시약을 투입해 각..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더 아름답고 더 화려하게’ ‘더 아름답고 더 화려하게’

  • 추울 땐 족욕이 ‘최고’ 추울 땐 족욕이 ‘최고’

  • 국정 후반기 첫 민생토론회 위해 공주 찾은 윤석열 대통령 국정 후반기 첫 민생토론회 위해 공주 찾은 윤석열 대통령

  •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 구세군 자선냄비 모금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