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곡사 뒤편으로 보이는 태화산. |
▲십승의 땅, 태화산=택리지, 정감록 등 지리서 비기 등에 삼재(三災-전쟁 질병 기근)와 팔난(八難-배고픔 목마름 추위 더위 물 불 칼 병란 )이 들지 않는다는 '십승지지(十勝之地-열 곳의 뛰어난 땅)' 또는 몸을 지키기 좋고 오래 살 땅이며 착한 정승과 좋은 장수가 나온다는 '보신의 땅' 열 곳이 기록되어 있다. 십승의 땅은 경치 좋은 명승지로 해석하기도 한다.
도참설과 풍수지리설에 따른 그 열 곳의 땅은 조선 명종 때의 학자 남사고(南師古)의 주장이 알려져 있다. 그 열 곳은 풍기 금계촌, 안동의 춘양, 보은 속리산, 운봉 두류산(지리산), 예천 금당동, 성주의 만수동, 공주의 유구와 마곡, 영월의 정동 상류, 무주의 무풍, 부안 변산이다.
한 편 정감록에 기록된 보신(保身)의 땅 열 곳은 풍기 예천, 안동의 화곡, 개령의 용궁, 가야, 단춘, 공주의 안산 심마곡, 진목, 봉화, 운산봉 두류산, 풍기의 대 소백산이다.
마곡은 양 쪽에 다 들어가 있다. 십승의 땅 유구와 마곡 사이 또 보신의 땅에 들어 있는 안산 심(深)마곡은 모두 태화산을 말한다. 정감록에는 '공주 유구 마곡 양 수(水) 사이, 두루 돌아서 백리 안에서는 가히 살육을 면할 수 있다'로 되어 있다. 지리설이나 도참설에서 태화산을 높이 평가하고 있지만 태화산의 경관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태화산에는 세 가지 좋은 점이 있다. 첫째, 산길 모두가 부드러운 흙길로 내내 편안하다. 바위를 거의 볼 수 없다. 둘째, 처음에서 끝까지 노송이 대부분인 소나무 숲속을 걷게 된다. 셋째, 등성이만으로 이어지는 산길은 그리 가파르지 않으면서 여러 개의 봉우리를 타고 넘는 점이다. 따라서 태화산은 어려운 바윗길이 없고 가파르지 않아 눈 많고 길이 얼어붙는 추운 겨울에도 산행하기 좋고 나무 그늘과 순한 산길로 더운 한 여름에도 산행하기에 알맞다. 노년의 산행에 좋은 것은 물론이다.
나발봉과 활인봉 두 봉우리에 정자가 있고 곳곳에 긴 의자가 놓여 있어 산행 도중 쉬기에 좋다. 좀 가파른 곳에는 인조 통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편리하다. 마곡사가 산행의 들머리이며 끝자리인 회귀산행인 것도 좋다.
태화산 북편의 상원골은 아름다운 계곡이다. 여름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든다.
▲마곡사와 백범 김구 선생=백범 김구 선생이 마곡사에 머물렀던 사실이 백범일지에 적혀있다. 백범은 한말 민비 시해에 대한 복수를 결심하고 일본인 장교 쓰치다를 황해도 안악군 치하포 나루에서 죽였다.
1898년 23세의 청년 백범은 인천감옥에서 탈옥하여 마곡사에 숨어들어 하은당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삭발을 했다.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주로 마곡사 부속 암자인 백련암에서 물도 긷고 장작을 패며 천수심경 등 불경을 외며 6개월 동안 스님생활을 했다.
해방 후 마곡사를 찾은 백범이 기념으로 심은 향나무가 대광보전 왼편 응진전 앞에 있다.
백범이 마곡사로 들어가며 '한 걸음씩 혼탁한 세계에서 청량한 세계로 지옥에서 극락으로 세간에서 걸음을 옮겨 출세간의 길을 간다'라 한 말이 백범일지에 적혀있다.
호젓한 소나무 숲속길 매력=눈이 쌓인 겨울 어느 날 친구들과 태화산에 올랐다. 마곡사를 구경하다 하얀 눈길의 유혹에 빠졌기 때문이었다. 마곡사 뒤쪽으로 마곡천을 따라가 흙 박물관을 지나 토굴암 길에 들어섰다. 토굴암이 등지고 있는 등성이에 올라서며 제대로의 산행이 시작됐다.
태화산 산행이 좋은 것은 험한 바윗길이나 가파른 곳이 없고 소나무 ? 속 길이어서 눈이 쌓인 겨울이나 더운 여름에도 편안하게 산행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나발봉 정자에서 잠시 쉰 다음 산비탈 길로 샘골을 싸고돌다 또 한참을 오르면 태화산 고스락의 활인봉이다. 여기에도 정자가 있다. 활인봉에서 백련암으로 내려가는 등성이 길은 넓고 편안한 숲 속이어서 좋았다.
등성이에서 비탈로 내려서면 바로 한자리 마애불이 있고 나무 사이로 저 아래 백련암이 보인다. 백련암은 호젓했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도 백련암의 이 호젓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 여기에 머무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련암에서부터의 길은 넓고 샘골 큰길로 내려서면 백련암 안내 표지석이 있고 길은 더 넓은 찻길이다. 여기서 산행을 시작했던 마곡사 큰 절은 가깝다. 세 시간의 즐거운 산행이었다.
▲챙겨보기
마곡사(麻谷寺)=태화산에서도 마곡사 자리는 핵심이 되는 곳이다. 산과 물이 태극(太極)을 이루는 산태극 수태극의 중심이라 한다.
고려 명종 때 보조국사가 폐찰을 중건하라는 왕명을 받고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 마곡사 자리를 보고 너무 좋아서 다리 위에서 춤을 추었다 한다. 그는 춤을 추며 '복지가 맑은 개울에 임하였으니 금방울 소리가 소나무 사이에서 울린다'라는 시를 읊었다. 보조국사가 춤을 추었다는 다리를 '무교(舞橋-춤춘 다리)'라 하고 지금도 그 무교와 함께 '춤다리'라는 마을도 있다. 또 절 땅을 잡으면서 '은혜는 금 못에 적시고 덕은 용의 귀보다 높은 형국의 땅'이라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도선대사도 '천만년 오래도록 절이 들어앉을 큰 터이며 삼재가 들지 못하는 곳' 또 '유구와 마곡 두 냇물 사이는 천명의 목숨을 살릴만한 곳'이라 했다 한다.
마곡사는 조선조 세조가 매월당 김시습이 숨어있다는 말을 듣고 왔으나 매월당을 만나지 못하자 연(왕이 타는 가마, 현재 보관 중)을 버리고 갔다는 이야기, 나발봉을 조산으로 하는 군왕대 영산전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 밖에 세조가 썼다는 영산전 현판, 시문서화 사절(四絶)로 꼽히던 표암 강세황이 쓴 대광보전의 현판, 청백리 송하 조윤형이 쓴 심검당의 현판이 있고 5층석탑 대광보전 대웅보전 괘불 감지은니묘법연화경 2점 등 보물 6점이 있다.
마곡사 대광보전 정면 가운데에 있는 높이 8.4m 의 청석으로 된 오층석탑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이 석탑의 꼭대기에 얹혀있는 것이 풍마동(風磨銅)이라는 희귀한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중국, 인도에 각각 하나씩 밖에 없다는 구리 장식으로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두면 광택이 불처럼 이글거린다고 한다. 고려 말 원나라 라마교의 영향을 받은 장식이라 한다. 이 오층석탑은 일명 다보탑이라 하기도 한다.
▲가는 길
버스=공주 또는 마곡사 들머리인 사곡(사곡면 사무소 소재지, 32번 국도변)에서 시내버스(공주 발)를 이용해야 한다. 버스는 사곡에서 오후 4시 이전에는 매시 25분, 오후 4시 이후에는 매시 45분에 마곡사로 들어간다. 이 버스가 마곡사 정류소에서 바로 되돌아 나온다.
승용차 또는 관광버스=공주 예산을 지날 때는 32번 국도를 타야 한다. 공주를 지날 때는 사곡에서 629번 지방도, 예산에서 갈 때는 유구에서 604번 지방도를 타면 마곡사에 이른다. 천안 아산에서도 직접 갈 수 있다. 천안에서는 623번 지방도, 아산에서는 625번 지방도를 타고 남쪽으로 가다 629번 지방도에 들어서면 된다.
부여에서는 내내 39번 국도를 타고, 청양에서는 36번 국도를 타고 가다 정산에서 39번 국도에 들어서서 유구로 간 다음 604번 지방도를 타면 마곡사에 가게 된다.
김홍수 소산 산행문화연구소장은?
▲김홍주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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