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술을 빚을 때 주로 쌀을 썼다. 쌀을 시루에 쪄서 일반 밥보다 꼬들꼬들한 고두밥(술밥)을 만든 뒤에 누룩과 여러 가지 재료들을 섞어서 술단지에 넣고 발효시켜 술을 빚었다. 술이 잘 발효되면 맑은 술(동동주)을 뜨기 위해 술단지에 고깔처럼 대나무로 만든 용수를 박아서 그 안에 고인 술을 퍼낸다. 바로 이것이 맑은 술(동동주)이다. 이 술을 주로 제사나 잔치에 썼다. 맑은 술을 뜨고 난 뒤에 남은 것은 체에 받쳐 걸러서 막걸리를 만들었다. 이 막걸리를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수증기를 모은 것이 소주이고 초병에 넣어 부뚜막 뒤에서 발효를 더 시키면 양조식초가 됐다.
그런데 쌀이 술을 만들어 먹을 만큼 충분치 않아서 한동안 가정에서 쌀을 가지고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각 가정에서는 예전에 해오던 대로 술을 담그곤 하였다. 그래서 술을 담가서 쌀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술조사를 실시했다. 순박했던 일반 가정에서는 가장 두렵고 무서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므로 갑자기 들이 닥치는 술조사를 피하기 위해 가정에서만 아는 곳에 술단지를 묻거나 술조사가 나오면 대문을 닫아걸고 집을 비우고 피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심지어는 쏟아버리기까지 했다.
술단지뿐만 아니라 술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누룩까지도 철저히 조사했기 때문에 누룩의 흔적도 없애거나 감추느라고 온 마을에 난리법석이 났다. 동네 청년들이 술조사꾼으로 위장을 하고 마을 아주머니들을 놀래키면서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어느 마을에 술조사가 나왔었다는 소문이 돌면 이웃마을에서도 긴장하곤 했다. 이제는 쌀이 남아돌아 술조사는 옛 추억의 한 단편으로 남아 있지만, 술조사는 가장 두렵고 무서운 추억 가운데 하나였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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