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찬]술조사 - 가장 두렵고 무서웠던 추억

  • 문화
  • 우리문화를 아시나요

[정동찬]술조사 - 가장 두렵고 무서웠던 추억

우리문화를 아시나요

  • 승인 2012-09-18 14:26
  • 신문게재 2012-09-19 21면
  •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고객창출협력과장
추석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맘때쯤이면 언제나 추석선물에 대한 홍보물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종류도 다양하지만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술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예로부터 여러 가지 술들이 만들어져 왔다. 옛 기록에 우리겨레는 음주가무를 즐겼다고 한다. 제사 때나 잔치 때 빠지지 않는 것이 술이다. 제사나 잔치에 쓰기 위해 각 가정에서는 술을 빚었다. 그러한 행사가 아니더라도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항상 술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지역이면 지역, 가정이면 가정에 따라 독특한 술들이 태어났다. 할머니나 어머니의 손끝에서 여러 가지 색과 향과 맛을 가진 술들이 탄생했다. 지역의 특산물들이 술과 어우러지면서 그 색과 향과 맛을 더해갔다.

이 술을 빚을 때 주로 쌀을 썼다. 쌀을 시루에 쪄서 일반 밥보다 꼬들꼬들한 고두밥(술밥)을 만든 뒤에 누룩과 여러 가지 재료들을 섞어서 술단지에 넣고 발효시켜 술을 빚었다. 술이 잘 발효되면 맑은 술(동동주)을 뜨기 위해 술단지에 고깔처럼 대나무로 만든 용수를 박아서 그 안에 고인 술을 퍼낸다. 바로 이것이 맑은 술(동동주)이다. 이 술을 주로 제사나 잔치에 썼다. 맑은 술을 뜨고 난 뒤에 남은 것은 체에 받쳐 걸러서 막걸리를 만들었다. 이 막걸리를 가마솥에 넣고 끓여서 수증기를 모은 것이 소주이고 초병에 넣어 부뚜막 뒤에서 발효를 더 시키면 양조식초가 됐다.

그런데 쌀이 술을 만들어 먹을 만큼 충분치 않아서 한동안 가정에서 쌀을 가지고 술을 빚는 것을 금지하는 일이 있었다. 그러나 각 가정에서는 예전에 해오던 대로 술을 담그곤 하였다. 그래서 술을 담가서 쌀을 낭비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술조사를 실시했다. 순박했던 일반 가정에서는 가장 두렵고 무서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므로 갑자기 들이 닥치는 술조사를 피하기 위해 가정에서만 아는 곳에 술단지를 묻거나 술조사가 나오면 대문을 닫아걸고 집을 비우고 피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거나 심지어는 쏟아버리기까지 했다.

술단지뿐만 아니라 술을 만드는 재료가 되는 누룩까지도 철저히 조사했기 때문에 누룩의 흔적도 없애거나 감추느라고 온 마을에 난리법석이 났다. 동네 청년들이 술조사꾼으로 위장을 하고 마을 아주머니들을 놀래키면서 한바탕 웃음바다를 이루기도 했다. 어느 마을에 술조사가 나왔었다는 소문이 돌면 이웃마을에서도 긴장하곤 했다. 이제는 쌀이 남아돌아 술조사는 옛 추억의 한 단편으로 남아 있지만, 술조사는 가장 두렵고 무서운 추억 가운데 하나였다.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