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토크]국무총리실의 팥시루떡

  • 오피니언
  • 문화칼럼

[문화토크]국무총리실의 팥시루떡

<최충식의 문화토크>

  • 승인 2012-09-16 13:57
  • 신문게재 2012-09-17 21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이 장떡이 큰가 저 장떡이 큰가' 싸울 때 아냐.
'먹다가 보니 개떡 수제비' 안 되도록
'꿈에 떡 맛보기',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기'는 그만….

시작이 반인가. 문톡(문화토크) 스타일의 '시루떡 정보 원리' 첫머리가 시원찮아 잠깐 머리를 식히는데, L교수의 카톡(카카오톡) 상태메시지가 눈에 들어온다. '삶은 꽃이다. 사랑은 그 꽃의 꿀이다'라는 빅토르 위고의 연애편지 구절이 떠 있다. 내 카톡의 대응 메시지는 외국 속담이다. “사랑은 달콤하다. 그러나 빵과 함께 최상의 맛을 낸다.”

이 속담을 우리가 만들면 '빵'의 자리에 '밥'이거나 밥의 일상성을 탈피한 '떡'을 주물러 넣었을 것이다. 일본의 '꽃보다 경단'이 우리 '꽃보다 떡'이다. 먹을 것 중시에는 문화 간 큰 차이가 없지만 변별성은 있다. 떡이 전형적으로 그렇다. 빵과 케이크에 안방을 내주고도 떡은 아직 돌잔치, 개업, 기념행사 등에서 특수한 지위를 누린다. 첫 이삿짐을 풀고 오늘(17일) 세종시 시대의 공식 첫날을 맞은 국무총리실에도 이사떡 신고에 앞서 맞이하는 편의 환영 시루떡이 돌려진다.

호주나 남아공, 브라질의 행정도시에서라면 맛보지 못할 우리만의 '역사적'인 떡이다. 이사 때 일본에서도 '힛코시소바'를 돌린다. '이사 메밀(국수)'쯤 되겠는데, 메밀(소바)의 발음이 이웃(傍, 側)과 같아 그들 식의 정 나누기에 이만한 음식이 없다. 뉴요커들은 가끔 '웰컴 비스킷'으로 축하하기도 한다. 그러나 떡 돌리기만큼 끈끈하지 않다.

언어생활에서도 우리는 뜻하지 않게 좋은 일에 '웬 떡이냐' 한다. '빵과 소금 없이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폴란드인도 '떡 되다', '떡실신'의 속뜻은 모른다. '반쪽의 빵도 없는 것보다 낫다'는 영국인이 '떡 주무르듯 하다'를 알 턱이 없다. 외국인이 '같은 떡도 맏며느리가 주는 놈이 크다'를 이해하려면 문화의 속살을 공부해야 한다. 흰 옥수수만 먹는 아프리카 부족, 구호품으로 도착한 노란 옥수수자루 곁에서 죽어가는 그들 속을 우리가 모르는 사정과 같다.

알게 모르게 떡 인심은 스마트 시대에도 정(情)의 메신저 기능을 잃지 않았다. 복이 따라오게 옛집 문구멍을 찢고 복이 쓸릴까봐 비질도 안 하고 떠난 습속, 집안 망한다고 신 음식과 식초병을 두고 떠나는 금기, 이삿짐 장롱에 붉은 팥떡을 넣고 새 집 사방에 팥죽을 뿌리던 귀신 쫓기, 시루떡으로 복 빌고 동네방네 나눠먹던 그 원형질이 남아 있는 것이다.

의미야 조금 변질됐지만 시루떡 한 접시의 추억과 꿈은 망각되지 않았다. 이사 동기가 무엇이건 달콤바삭하게 잘살고 싶은 염원을 안고 간다. 정부세종청사로의 이사 행위는, 서울에는 떡시루째 가고 지방은 팥고물만 떨어지던 시대와 작별하는 중요한 의도가 있다. 번화한 광화문의 정부서울청사에 비해 당장은 심란한 벌판으로 보일 수는 있겠다.

그렇다면 솥단지만 걸면 이사 끝났다고 간주한 조상들의 살림살이 경책이라도 배워봐야 할 것이다. 따뜻한 표준 정서가 담긴 축하 시루떡에 담긴 마음을 받아 불편과 걱정을 설렘과 두근거림로 바꾸면 좋겠다. 비어 있음은 채움의, 없음은 있음의 창조적 모태다. 총리실 선발대가 중도(中都), 신도(新都)의 해피엔딩을 주도하길 바라는 마음, 굴뚝같다.

최충식 논설실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더젠병원, 한빛고 야구부에 100만 원 장학금 전달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