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태 변호사 |
어린 시절 친구들과 함께 뒷산에 놀러갔다가 내려오는데 햇빛이 비치는 가운데 들녘에 고즈넉이 내려앉은 무지개를 바라본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이슬 맺힌 초롱꽃처럼 아름답다. 생생한 기억 탓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가끔 무지개를 상기하면서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희망의 빛으로 보여주셨던 그 무지개를 떠올려 본다. 하나님께서 물로 이 세상을 휩쓴 후에 그래도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만한 가치가 있는 존재라는 그 뜻을 이 무지개에 담으신 것 같다.
무지개는 어떤 사람에게 있어서는 단순히 빗방울에 의한 햇빛반사로 만들어진 아름다운 현상이라고 표현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성경적인 의미에서는 노아 홍수 후의 무지개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희망을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악하고 어리석음과 절망의 삶을 버리고 앞으로는 선하고 기쁨에 넘치는 희망의 삶을 바라는 마음에서 무지개를 보여주신 것이다. 우리에게 무지개란 희망을 상징한다. 미래의 모습이 무지개처럼 아름답기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실제 노아 홍수의 무지개는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희망을 보여준 것이지 인간 자신의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각자는 미래의 삶에 대한 기대로 살아간다. 그리고 마음먹은 대로 잘 되지 않을 때에 가끔 남을 탓하고 나라님을 원망하기도 한다. 아마도 나이를 어느 정도 먹게 되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에게 또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한 때 잘 나간 적이 있었어. 하지만 그 놈의 …때문에”라고. 그래도 우리 인간에게는 미래라는 남은 여백이 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것이다.
그 여백 위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기를 바라는 것이 인간인 것이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삶에 있어서 자신의 힘으로 이루는 것 외에 상당한 부분이 우연히 우리에게 찾아올 행운을 바라면서 살아 왔던 것처럼 느껴진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삶이란 우연에 의하여 행과 불행이 결정되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 것이다. 운명철학, 즉 점치는 것에 자신의 삶의 미래를 정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아마도 현재의 자신에게 주어진 삶이 자신의 책임이라는 점을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리라. 오히려 운명의 탓으로 돌림으로써 자신의 불행한 처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 있어서 행과 불행의 의미는 우연도, 정해진 숙명도 아니라는 사실을 노아의 무지개는 말하고 있는 듯하다. 이 무지개는 우리의 희망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바라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삶이란 하나님께서 인간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기대이며 그 기대란 바로 행동과 그 결과에 있어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질 줄 아는 진정한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노아처럼, 사람들은 국가와 사회가 우리가 잘 살 수 있도록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또한 이것을 행복의 조건의 하나라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여유 있는 사람들로부터 일부의 부를 나누어 자신들의 어려운 점을 채워주어야 하며 이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것이다.
때로 사회를 부자와 빈자의 대립으로 보기도하고 그래서 정치는 부자로부터 일부를 빼앗아다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정의라고 외치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과 외침은 옳은 것 같으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어색하다. 여기에 바로 자신의 처지를 자신의 책임이 아닌 남에게 전가하려는 저의가 내재한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물론 분배에 대한 정의가 모두 이런 뜻에서 연유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면 내심에 있어서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 한 가지 점임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란 노아의 무지개처럼 하나님 앞에 하나님의 희망의 존재로서 서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지개처럼 아름다운 인간으로 살기를 바라는 것이며 이것은 바로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질 줄 하는 인간을 의미했던 것이다. 국가와 사회가 나에게 무엇을 해 줄 것을 묻지 말고 먼저 스스로 국가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지 물으라는 케네디의 말이 연상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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