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기천 전 서산시 부시장 |
선생님께서 “살아가는데 꼭 있어야 하는 것, 세 가지가 무엇이냐?”고 물으셨다.
그 때 필자는 “공기, 물, 땅”이라고 말했고 다른 학생은 “공기, 물, 해”라고 대답했다. '공기'와 '물'은 공통으로 들었으나 '땅'과 '해'에서 갈리면서 초등학생 수준의 토론이 이어졌지만 쉽게 결론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선생님은 '의ㆍ식ㆍ주(衣食住)'라는 정답을 기대했는지, 혹은 다른 답을 요구했는지 모를 일이지만 '더 생각해보라'는 말씀으로 마무리 하신 것으로 기억된다.
차라리 '네 가지를 물으셨으면…' 한 것이 당시의 생각이었다. 올림픽이 끝난지 한 달이 되었다. 밤잠을 설치게 하고 비몽사몽간에 TV앞에 앉게 했던 올림픽도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슬슬 무덤덤해지고 있는데 왜 옛 일이 떠오를까?
금메달 수로는 개관적인 국력을 뛰어넘는 세계 5위라는 기대이상의 성적은 국민들을 환호하게 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왜 3위안에 들어야 메달을 주고 메달 수상에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준결승전에 진출했으나 패하고 3ㆍ4위전에서도 패하면 메달을 받지 못할 뿐 아니라 명예나 포상, 연금, 병역 이런 것들에서 엄청난 차이, 즉 실력과 더불어 컨디션, 대진 운, 심판 운 등 여러 가지 변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에서 불과 한 계단의 성적에 따라오는 큰 차등에 대해 의아한 것이다. 이번 대회에서도 메달을 따지 못한 4등이 하나, 둘이 아니었다. '1초의 오심'으로 최소한 은메달을 따는 기회를 놓쳐 안타까움을 자아낸 펜싱 신아람 선수가 3ㆍ4위전에서 마저 패해 흘린 통한의 눈물. 여자 역도에서 4위에 머물러 메달획득에 실패한 뒤 그 자리에 꿇어 앉아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바벨에 '손 키스'를 한 장미란 선수의 처연한 모습. 두 차례의 연장전 끝에 패해 4위에 머문 '우생순' 여자 핸드볼 팀, 남자 축구에 이은 또 하나의 이벤트 여자배구 3ㆍ4위전인 한ㆍ일전에서는 패해 눈물을 쏟은 MVP 김연경을 비롯한 선수들, 노장 김경아가 분전한 여자 탁구 단체전 3ㆍ4위전에서의 패배들이 그렇다.
물론 경기나 경연에서 입상 순위를 매기는 데는 일정한 범위를 정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리고 대부분 '3등' 까지를 가리고 상을 준다. 숫자로서도 '3'이 갖는 뜻이 크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삼'을 좋아 한다. 하지만 '사(4)'가 지닌 의미도 만만치 않다.
사각형의 태극기에 건곤감리(乾坤坎離) 사괘(四卦)를 넣어 하늘과 땅과 해와 달을 상징하고 아울러 동서남북 사방과 춘하추동(春夏秋冬) 사계절, 인의예지(仁義禮智) 즉 사람으로 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즉 사단(四端)을 뜻한다.
세계 4대 성인을 꼽고 인류문명의 발상지로 네 곳을 들고 있다. 축구 월드컵에서 올린 '4강 신화'는 지금도 감격과 자부심으로 남아있다. 또한 손연재 선수가 체조에서 거둔 5위의 성적에 환호하지 않았는가? 이제 세월이 더 흐르면 그 감격과 아쉬움은 우리의 기억에서 점점 멀어질 것이다. 그렇게 잊어가면서 웬만한 메달 못지않게 가슴을 울렸던 종목과 선수들은 더욱 희미해 질 것이지만 우리가 느꼈던 안쓰러운 상황들에서 의미를 찾아보면 어떨까?
'일등만이 기억되는 세상', '선거에서 2등은 없다'고 하는 냉엄한 현실에서 '등외'라 할 수 있는 4등과 그 너머까지를 말하는 것은 물정을 모르는 공상일까 하면서도 그들에게 '괜찮아'하는 위로와 '다시 도전하면 되지'라고 격려하며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과제를 띄워본다.
'등외'도 인정받고 기를 펼 수 있는 분위기가 된다면 치열한 경쟁사회를 다소나마 느슨하게 하고 세상은 좀 더 고르고 여유로워지지 않을까, 이룬 사람보다 더 많은 실패한 사람, 낙오된 사람도 다시 설 수 있는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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