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일규 대전둔산초교장, 前충남서예가협회장 |
그 중에서 독특하고 힘찬 솔경체(率更體)를 이룬 구양순이 유명한데, 그는 글씨를 쓸 때 붓이나 종이를 가리지 않았다. 그러나 저수량은 붓이나 먹이 좋지 않으면 글씨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세 사람 중에서 가장 나이가 젊은 저수량은 건국공신 위징(魏徵)의 추천으로 우세남의 후계자가 되었는데, 그가 하루는 우세남에게 “저의 글씨를 지영(智英:우세남이 글씨를 배운 禪師)과 비교하면 어떠할까요?”하고 물었다. “지영의 글씨는 한 글자에 5만 냥을 내도 좋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지만 자네는 아무래도 안 될 거야 “그러면 구양순 선생과는 어떨까요?”했더니, “그는 어떤 종이에 어떤 붓을 사용해도 자기 마음대로 글씨를 쓴다고 한다. 자네는 아무래도 안 될거야.” “그러면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고 하자, “자네는 아직 손과 붓이 굳어 있다. 그것을 완전히 없애면 크게 성공할 수 있을 것이네.”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은 어느 붓이든 가리지 않고 글씨를 썼다는 말이 아니다. 그도 역시 행서(行書)를 쓸 때에는 그 글씨에 맞는 붓을 선택하였고, 초서(草書)를 쓸 때에는 초서에 알맞은 붓을 선택하였다. 단지 조잡한 붓으로 글씨를 쓰더라도 그의 대가(大家)다운 경지에는 변함이 없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에 대해서 왕긍당필진(王肯堂筆塵)에서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이 속설은 구양순까지이고, 그 이후의 사람들은 붓이나 종이를 문제로 삼고 있었다. 주현종(周顯宗)의 논서(書)에서는 '글씨를 잘 쓰는 사람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만, 이는 통설이라고 할 수 없다. 행서(行書)와 초서(草書)를 제외한 해서(楷書)ㆍ전서(篆書)ㆍ예서(隸書)를 쓰는 경우에는 붓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붓을 가리지 않을 수 없다”라고 하였으나 달인은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하듯 모든 일을 바르게 처리한다.
박일규 대전둔산초교장, 前충남서예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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