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은주 목원대 유아교육과 교수 |
만 2세 전후의 아이들은 지구의 축이 자신을 중심으로 도는 것으로 여기는 '자기중심성'의 극치를 달리는 발달시기에 있다. 아울러 자신의 주변 일들을 혼자서 해 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나타낸다. 성인의 눈으로 아이를 바라보면 제대로 해내지도 못하면서 꾸물꾸물 움직이는 듯 해 곁에서 지켜보는 것이 여간 답답한 게 아니다. 그래서 도와주려고 하면 아이는 강하게 저항한다. 어떤 면에서는 이전시기보다 손이 더 많이 가는 때이기도 하다. 이러한 만2세전후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 어지간히 힘이 들었는지 서양에서는 '무시무시한 두 살(terrible two)'이라 하고, 우리는 만2세를 세는 나이로 해서 '미운 네 살'이라고 이 시기 아이들을 지칭하곤 한다.
그런데 이 시기의 자기중심성은 사회성의 결여라고 하기보다 아직 타인의 관점에서 생각하기 어려운 인지적인 한계에서 비롯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아이들과 숨바꼭질을 하면 자신의 얼굴만 파묻고 몸은 밖으로 드러낸 채 술래가 자기를 못 찾을 거라고 생각한다. 엉덩이가 다 보이게 드러나 있지만 자기 눈에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다른 사람들도 자기처럼 볼 수 없을 거라 여기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습은 두 돌 아이들에게서만 보이는 건 아니다. 유치원에 있어보면 자신의 손때가 묻어 꼬질꼬질한 행색의 미니어처를 아이로부터 선물 받곤 하는데, 선물을 주는 아이의 표정은 선생님이 그 선물을 무지 좋아할 거라는 확신에 차 있다. 어린 연령의 아이들은 다른 사람이 나와는 다른 생각이나 입장일 수 있음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기중심적인 생각과 스스로의 힘으로 해 보겠다는 자율성의 합작(!)으로, 만 두 돌 전후의 아이는 “이가 할 거야.”를 남발한다. 여기서 이는 '내가'라고 말하는 대신 아이가 자신의 이름을 넣어 말하는 식이다. 흘리지 않고 잘 먹지도 못하면서 “이가 먹을 거야”, 제대로 착용하지도 못하면서 “이가 (옷을)입을 거야, (신을)신을 거야”라고 하며 주변의 도움을 거절한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함께 무엇인가를 하면서 양보하고 나누는 것에 대해 눈이 뜨는 사회성 발달의 시작을 보통 만3세쯤으로 본다. 오래전 가족 내에 서너 명의 형제자매가 있던 시대에는 가정 안에서 형제자매들 간에 좌충우돌하며 사회성이 길러질 수 있었지만 소 자녀가 대부분인 현 시대는 그렇지 못하다. 그래서 만3세쯤이 되면 그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장(場)으로써 유아교육기관이 필요하기도 한 것이다. 그리고 그 이전시기까지는 여건이 허락한다면 가정에서 일대 일의 돌봄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이의 발달을 위한 최적의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기밖에 모를 시기이니 아이가 하자는 대로 내버려 두라는 뜻은 아니다. 유치 관리를 잘 해야만 건강한 영구치가 나오듯이 사회성 발달의 초석은 만3세 이전시기의 아이와 가족 특히 주로 아이를 돌보는 어머니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다져진다.
아이가 몸이 불편할 때 이마를 짚어주고 따스함을 원할 때마다 포근히 안아주고 궁금한 것이 많아 이것 저것을 만져보고 싶어 할 때 손에 잡히는 곳에 놓아주고, 기고 서고 걸으며 자신의 몸을 움직이고 싶어 할 때 안전한 곳을 마련해 주어서, 아이가 누군가 자신을 늘 지켜봐주는 이가 있어서 세상이 참 좋은 곳임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게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만 가정을 떠나 사회에 나왔을 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기대하고 자신이 받은 대로 남들에게 베풀 수 있는 가슴을 키워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사회성 발달은 유아교육기관이라는 외부사회와 접하였을 때 시작된다고는 하나 그 이전, 가정에서부터 길러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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