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채산 서천 한산초 교사 |
“선생님, 이거 왜 하는 거예요?”
순례 활동을 계획하고 떠나기 전 학생들이 항상 하는 질문이다.
“응, 나와 우리를 찾아 떠나는 여행!”
나의 짤막한 대답에 학생은 고개를 갸웃하며 돌아서 간다. 여행을 통해 우리는 학생들 자신을 스스로 되돌아 볼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주고, 더불어 내 옆에 있는 친구를 돌아볼 기회를 갖게 해주고 싶었다. 힘든 역경에 부딪히면 성격이 보인다고 한다. 이성 친구의 성격을 알고 싶으면 힘든 산을 올라가 보라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나 다를까? 우리 아이들은 여행 도중 금방 본색을 드러낸다. 국토 순례 중간 코스에 산에 오르는 길이 있어 그 산에 오를 때의 일이다. 그동안 많은 길을 걸어왔던 터라 산에 오른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휴, 힘들어, 선생님 못 가겠어요.”
여기저기서 투정 어린 목소리들이 흘러나온다. 심지어는 앞서가는 친구를 시기하는 친구까지 나온다. 다른 사람도 함께 힘들고 지쳐야 하는 데 나만 힘들고 쳐지는 것이 싫었던 모양이다. 그때 저만치 앞서가던 한 친구가 돌아서서 다시 내려온다.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어딜 가나 저만치 혼자서 가는 그런 친구였다. 그 친구가 제일 뒤에서 처져 불평을 늘어놓던 다른 친구의 가방을 낚아채듯 들고 쌩하니 앞으로 내달렸다. 뒤처진 친구에 대한 살갑지 않은 배려였다. 그 친구에게는 그것이 최선의 배려였을 것이다. 그 친구의 선량한 용기와 배려에 힘입은 한 무리의 친구들은 끝까지 불평 없이 산에 오를 수 있었다. 가방을 들어준 아이도, 투덜거리던 아이도 모두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마음속으로 느끼는 순간이었을 것이다.
국토순례 활동 기간에 아이들을 보면 평소에 알고 있던 모습과는 많이 다름을 느낀다. 나만 알고 다른 친구에게 준비물 하나 빌려주지 않던 아이가 화장실 간 친구의 가방을 지켜주느라, 함께 버스를 놓치기도 했고, 늘 투덜대며 숙제와 과제를 안 해오며 역할 분담 활동에도 소홀하던 아이가 함께 머물 텐트를 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았다. 서산 방조제 길을 걸으며 힘든 친구에게 물을 나누어 주기도 하고, 땀을 흘리며 고생하는 친구에게 손부채를 부쳐주는 모습은 예쁘기 그지없다. 집을 떠나 고생하는 막둥이 동생을 챙겨주는 따뜻한 누나·형들의 마음이 있었다. 좋든 싫든 함께 가야 하는 동료이기 때문일까. 친구를 괴롭히고 싸우거나 따돌리는 모습들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교실을 떠나 제3의 장소에서 함께 한 아이들과의 여행은 교사인 나에게도 새로움을 선사해 주었다. 교직경력이 늘어나며 열정을 바칠수록 반복되는 실망과 마음의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어갈 즈음 아이들에 대한 새로운 사랑이 움트는 소중한 경험이었다고나 할까. 그래도 개학을 기다리게 하는 소중한 추억 하나를 만든 셈이다. 함께 떠나 보자. 교실을 떠나 들과 산에서 만난 우리 아이들은 천사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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