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진섭 KAIST ICC운영부장 |
따라서 개인이던 조직이던 싫고 좋음을 떠나 이러한 환경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고, 또한 인정해야 할 것이다. 특히 민주화의 진전에 따라 국민의 대표로서 행정부를 감시·견제하는 입법부의 기능과 역할이 보다 확대·강화되면서 국가 사회 전반적으로 정치의 중심인 국회활동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과학기술계도 예외일 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일반적으로 과학기술은 정치적인 이해관계를 벗어나 국가적인 차원과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객관성과 합리성을 바탕으로 정책을 다루어왔고,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 암묵적으로 인식되는 사회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일련의 흐름들을 보면 이러한 사회적인 가치판단의 기준이 상당히 훼손되면서 지역적인 이해관계와 집단 이기주의 등으로 과학기술분야의 정책들이 정치적인 타협과 정치적인 의도 및 목적을 가지고 결정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물론 정치적인 결정이 모두 잘못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합리성을 결여한 정치적인 결정은 궁극적으로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활용에 문제를 일으키게 되고 이는 과학기술분야의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개연성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국가가 무한정(無限定)의 재화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기에 한정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활용해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정책판단의 기준이 된다. 특히, 과학기술분야의 경우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가장 중요한 핵심요소이기에 한정된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과 선택과 집중을 통한 자원의 효율적인 활용은 어느 분야보다도 그 중요성을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의 정책추진도 이러한 가치판단을 바탕으로 추진돼야 하며, 국회도 이러한 기준으로 정부를 견제하고 감시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정부와 국회가 때로는 국가적인 측면보다는 속칭 실세들과 개별 국회의원들의 지역에 대한 이해관계에 따라 과학기술정책을 바라보고 다루고 있기도 하는 것 같다. 과학기술이 이렇게 정치적이고 개별 이해관계 차원에서 다루어질 경우 정책결정의 합리성을 결여하기가 쉽고, 이는 결국 사회적인 갈등과 비용을 지불하면서 자원의 배분·활용을 왜곡하고 또한 비효율을 통해 과학기술분야의 경쟁력을 서서히 약화시키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과학기술정책이 전혀 정치적인 이해관계 및 활동과는 무관하게 결정돼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과학기술도 국가라는 범주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국가의 범주에 속하는 모든 것은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의 검증과 통제를 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지역의 이해관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현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에서는 아무리 과학기술의 국가적인 명분과 사회적인 가치판단 기준을 이야기하더라도 실제 추진되는 정책이 지역 또는 집단의 이해관계와 연관될 경우 명분만을 주장·유지하기가 쉽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정치권과 국회에 지역의 대표가 아닌 국민의 대표로서 과학기술분야를 바라보고 다루어줄 것을 기대하는 것이다.
19대 국회가 새롭게 개원을 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또한 올해는 다음 정부를 이끌어 갈 대통령을 뽑는 대선을 치르게 되는 중요한 해다. 국회에서 과학기술분야를 다루는 상임위인 교육과학기술위원회에 과학기술분야에 종사했던 분들과 인연을 맺었던 분들이 지역구와 전국구를 통해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그 숫자는 부족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여전히 희망을 갖고 있다. 과학기술분야와 관련이 있든 없든 앞으로라도 이제는 순수한 마음으로 정치권에서 과학기술을 다루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싶은 것이다. 그것이 우리 과학기술을 발전시키고 과학기술과 정치의 바람직한 관계라고 보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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