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기대 대전문화연대 공동대표 |
“아메리카노를 마셔야 회의를 할 수 있는 이분들(유시민, 심상정)을 보면서 노동자 민중과 무슨 인연이 있는지 의아할 뿐”이라는 한 진보당 사무부총장의 말. 굳이 설명을 하지 않아도 그들의 가치가 어디에서 멈춰 있는지를 알게 하는 대목이다. 당사자가 억울해할 수도 있고, 지나친 확대 해석이랄 수도 있겠지만, 말의 파장이 그리 간단치가 않다. 진보 진영 사람들의 취향(특히 의식주의 취향)을 '아메리카노'와의 연장선상에서 생각하게 만드니 말이다. 필자의 경우 하루 4잔 이상은 '아메리카노'를 마신다. 특히 글을 쓸 때 늘 같이 하는 기호식품 '아메리카노' 한잔은 순간의 행복 그 이상이다.
'아메리카노' 논쟁이 그 정당의 내부 문제에서 불거진 문제이지만, 오늘날 '아메리카노'와 같은 커피는 전 세계인이 즐겨 먹는 단순한 기호식품이자, 대중의 영역이 되어 버린 커피 문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커피 재배 과정의 착취나 유통 과정에서 거대 자본의 개입과 독점 문제가 있지만, 커피를 마시는 공간 '카페'까지도 말이다. 커피와 더불어 늘 같이 다니는 용어 '카페'는 오래전부터 문화적 공간으로 자리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1686년 '르 프로코프'(Le Procope) 카페가 생긴 이래, '카페'라는 공간과 그곳에서 마시는 커피는 문화와 예술을 꽃피는 장소와 촉매제였다. 커피를 마시며 '카페'에서 많은 사상가들이 정치와 철학적 담론의 장으로 활용하였으며, 루소나 볼테르(볼테르는 노년에도 하루에 50잔 정도를 마셨다고 한다), 몽테스키외와 같은 계몽사상가들은 자신들의 사상을 전파하는 장소로 활용했다. 정치적 변혁을 꿈꾸는 이들에게 '카페'는 정치적 혁명의 공간이자 데탕트의 둥지이기도 했다.
바흐의 세속 칸타타 211번의 타이틀은 아예 '커피 칸타타'이지 않은가. 20세기 초 한 세기의 문화와 사상을 싹트게 한 곳도 바로 이 '카페'다. 각 분야의 내노라 하는 예술가, 사상가들은 '카페'에서 한 잔의 커피와 더불어 자신들의 생각을 교환하고 확인하였다. 세잔느, 피카소, 장 콕토를 비롯한 수많은 화가들이 이후 초현실주의라는 전위적인 미술 장르를 개척했으며, 코코 샤넬의 경우 장례식에서나 볼 수 있는 검은색 의상을 새로운 패션 스타일로 창조해 냈고, 헤밍웨이, 사르트르, 시몬느 드 보부아르 등의 문학가는 실존주의 문학과 철학을 내놓았다.
20세기 파격적 음악의 장을 연 에릭 사티 같은 인물도 카페를 자신의 집처럼 드나든 인물로 빠지지 않는다. 이들은 '카페'를 단순한 음료를 마시는 장이 아닌 커피를 두고 다양한 의견을 교환하고 확인받는 그런 공간으로 활용했다. 오늘날 버전으로 말하면 '카페'에서 소통과 융합을 통해 창조적 활동을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고종 때 처음 커피가 들어와 '다방'이란 이름으로 자리하기 시작했다. 일제시대 '다방'에서는 많은 문인들이 문학 작품을 발표하거나 민족의 장래를 논하였다. 이후 시대에 따라 '다방', '커피숍'으로 잘 알려진 공간들이 커피와 더불어 문화공간으로 자리했으며, 1990년대 이후부터 현재까지는 '카페'로의 전환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다. 단순한 커피 한 잔이 아니라 커피라는 매개체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소셜 코넥터'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선 과거의 노래도 공연도 듣고 볼 수 있으며, 사색과 토론까지도 즐기고 교환할 수가 있다. 물론 빠지지 않는 음료 '아메리카노'와 함께 말이다. 그래서 '아메리카노'가 미국식 느낌을 준다는 이유로 반민중적이라 생각하는 자체는 누구 말마따나 너무 유치찬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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