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출신으로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인 매헌 윤봉길 의사의 애국혼이 서려있는 덕산 '충의사'에는 최근 일본의 망언을 비웃듯 윤 의사의 발자취를 찾는 방문객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
충의사는 1968년 성역화 사업으로 조성된 후 1972년 사적 제229호(예산 윤봉길 의사 유적)로 지정됐으며 윤봉길 의사의 영정이 봉안된 사당, 유품을 전시하고 최첨단기법인 영상복합모형으로 세계적인 전시연출로 역사의 산교육장인 기념관, 생가인 광현당, 성장가인 저한당(4세 이후부터 중국 망명이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구성돼있다.
기념관 내에는 보물 제568호로 지정된 윤봉길 의사의 유품 27종 51점이 전시돼 있으며 국내외를 통해 매년 15만여 명의 방문객이 찾아 윤봉길 의사의 애국 혼을 체험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는 1908년 예산군 덕산면에서 태어나 14세 때부터 유학자인 매곡 성주록 선생의 문하에서 유학을 정진하고 청년시절에는 야학을 열어 문맹퇴치운동을 시작으로 각곡독서회와 목계구매조합을 조직해 농민운동을 시작하고 야학과 농촌운동 교재로 농민독본 3권을 지어 유인본으로 펴냈으며 농촌구제와 농촌진흥을 위해 월진회를 조직하는 등 농촌운동가로 활동했다.
그러나 계몽운동의 한계를 느끼고 중국으로 망명해 김구 선생의 한인애국단에 입단한 윤봉길 의사는 1932년 4월 29일 상해 홍구공원에서 열린 일왕천장절기념 상해사변전승기념식에 의탄을 투척해 침략군 사령관 시라가와 대장 등 침략수괴에게 천주를 내리고 같은 해 12월 19일 25세의 일기로 순국했다.
예산=신언기 기자 sek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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