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기환 아트팩 대표 |
어느새 따뜻한 낮과 쌀쌀한 밤이 공유하기 시작한 걸 보니 이제 여름도 끝인 듯하다. 이곳 구도심엔 날씨만큼이나 가슴 뜨거운 사람들이 자신을 태우기에 여념이 없다. 1년여 동안 이곳의 다양한 열정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이 참 멋스러웠다. 그리고 안쓰러웠다.
누구나 대전의 문화를 말하며 기반이 약하다는 말을 빼는 법이 없다. 그건 자원이 부족하다는 말 즉 질적, 양적 수준이 그만큼 높지 않다는 이야기다. 부끄럽지만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고 불편한 진실이다. 그런 기름지지 못한 땅이 무엇인가를 피워보자는 많은 움직임에 의해 아직 꽃을 피우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면서 한참을 생각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애초부터 이곳 충청권은 문화의 기가 약한 것일까. 아니면 지리적 불리함일까. 인적자원의 부족일까.
지자체에서도 어디 부럽지 않은 다양한 지원과 협력을 내놓고 있고, 이미 언급한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이 이렇게 열심인데도 꽃이 피지 않는 이유.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다양한 이유가 존재 하겠지만 하나는 바래보고 싶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화운동과 사업기획, 컨셉트 등을 보고 있으면, 왠지 익숙했다.
어딘지 모르게 서울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과 흡사했고, 전주 어디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어딘지 모르게 청주에서 본 것 같고, 통영에 온듯했다. 물론 대전 어디에서건 본 적은 없다. 다만, 내 몸과 눈이 익숙했을 뿐이고 이내 흥미는 사라졌다. 그것들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의 훌륭함은 기대하기 어려웠으니까.
한국은 그렇게 면적이 큰 나라가 아니고, 정보망은 그 어떤 나라보다 작지가 않다. 어디 구석에 어떤 행사가 언제 어떤 식으로 열리는지, 어디가 좋은지, 어디가 색다른지 단어 하나 검색하면 친절하게도 연관된 정보까지 쏟아져 나온다. 심지어 그 검색창도 녹색 창, 파란 창, 보라색 창, 하얀 창…. 다양하기도 하다.
배를 타지 않는 이상 육지 안에서는 4시간이면 어디든지 갈 수 있다. 그만큼 간접경험도 손쉽지만, 직접 경험도 그리 어려운 편이 아니다.
그런 한국에 사는 죄로 안타깝지만, 이곳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들이 내겐 익숙하다. 그리고 뛰어나지도 않다.
꽃이 피지 않는 이유엔 종자가 좋지 않은 점도, 날씨가 도와주지 않는 점도, 병해충이 말썽인 점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꽃을 피우기 위해 땅을 일구는 티 안 나고 고생스러운 지속적인 정성과 관심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는 부분의 노력과 고생은 어떤 도움을 받기도, 도움을 주기도 참 어려운, 서로 이해타산이 맞지 않는 부분이란 걸 느끼고 있다. 지원을 받는 입장에서는 결과를 보여야 하고 지원을 주는 입장에서는 결과를 기다리기에, 이렇게 긴 시간 과정만을 위한 땅을 일구는 작업은 아직은 힘든 모양이다.
그곳에 어울리는 꽃은 그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야 오랜 시간 굳건히 그 자리에서 자생할 수가 있다. 그곳 환경과 여건에 맞는 잎과 줄기를 선보이고 주변의 환경과도 어우러지기 시작한다.
필요한 꽃밭을 위해 환경에 맞지도 않는 피워진 꽃들을 들고 와 꽃밭을 만드는 건 오래가지도, 어울리지도 않고, 피우는 정성 없이는 관리하는 정성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 벤치마킹은 카피와 다르고, 가뭄이 심한 땅에 필요한 건 홍수가 아니며, 땅을 비옥하게 하는 건 단기간 대량의 거름투여보다 지속적인 관리와 정성이다. 비록 눈에 드러나지 않는 고되고 오랜 기다림이지만 5, 10년 그 이상의 시간이 지났을 때 비로소 진정한 힘을 드러낼 것이다. 진정 중요한 것은 눈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 꽃잎의 화려한 자태들은 땅속 깊숙이 박혀있는 뿌리의 건강함이라 할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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