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영진 중도일보 전 주필 |
평생 정치, 사설, 칼럼 따위나 써왔기 때문에 기교에도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내가 발표한 내용은 '백제권 문화개발'이기 때문에 자연히 부여와 공주 백제권과 경주와 비교할 수밖에 없었다. 여기서 내 주장에 문제가 생겼다. 그 내용은 이런 것이다.
5·16 이후 경주만 개발하다 보니 부여, 공주 백제권은 허허벌판이었다. 게다가 경주개발에는 졸속한 나머지 시멘트화한 구석이 없지 않다. 또 한 가지는 신라문화의 표상이라 하는 석굴암에 문제가 있다. 비록 아마추어인 필자 눈에도 예사롭지 않게 보인다. 우선 골격부터 이야기해보자. 한민족의 국보요, 세계의 자랑거리인 석굴암엔 의문이 생긴다. 우선 석굴암 내부에 안치한 대불은 그 선이나 각 표상 등에 있어 신라인의 솜씨가 분명하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석굴암 정문 양측에 세워진 기둥은 신라의 것이 아니라 고구려 쌍영총 그것을 빼다 박은 듯하다. 또 있다. 석굴암 내부 암벽에 새겨놓은 불상 중 보현보살과 문수보살의 표상과 가사는 백제 것 그대로다.
그렇다면 석굴암은 신라 독창물이 아니고 신라·고구려·백제 삼국 합작물이라고 한다면 어떻겠는가. 삼국시대, 신라· 백제·고구려가 죽기 살기로 싸움질한 것도 사실이다. 동족이면서 왜 그토록 싸웠는가.
그것은 영토 빼앗기, 한 혈통이면서도 민족의식은 부족하고 부족의식이 앞선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어떻든 예술인대회 주제발표 때 나는 호된 시련을 겪었다. 내 발표가 끝나면서 영남예술문화인들이 떼 지어 일어나 '이리 나와라!', '석굴암 발언을 책임져라!', '그냥 못 넘어간다. 두고 보자!'하며 난장판을 부리는 게 아닌가.
그 바람에 나는 점심도 못 먹고 대회장을 빠져나왔다. 아마추어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다고 한 말이 그토록 소란을 몰고 왔다. 나도 혈기가 왕성한 때라 맞받아쳤다. TV토론이나 신문에서 공개토론을 하자고 했다. 그 다음 얼마 지나 국회야당에서 '지역감정해소 공청회'를 들고 나온 일이 있다. 그때 나는 또 공술인(주제발표자)으로 나갔다. 여기서 나는 각 지역주민들의 성격분석 그 장단점을 꼬집었다. 신라인의 당당한 기질과 호남인들의 싹싹하고 사교적인 면, 충청인의 양반기질 등을 떠들어댔다. 지역감정을 해소하려면 어떤 방법이 있겠는가? 이때 이렇게 답했다.
지금으로 봐선 '백년하청'을 기다리듯 참아야 합니다. 상식론, 원칙론 다 접어두고 당장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면 느낄 수 있습니다. 각 시도마다 장단점이 있지만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요즘 스포츠시즌입니다. 대전은 한화이고 대구는 삼성이지요.
구단의 저력으로 보나 다 실력을 보면 3대 7이라고 봅니다. 한화가 늘 지다가 어쩌다 이기면 그라운드가 한화단장을 향해 침을 뱉고 선수들에겐 맥주병, 선수들 차량에 돌멩이가 날아듭니다. 그러니 '이런 사람들이' 권력이나 경제권을 내놓겠습니까?
또 하나, 야구시합 대전팀 한화가 심심치 않게 영남팀과 붙은 경우가 많다. 그런데 실력은 거의 3대 7이다. 실력이 그렇고 자금도 얼마간 달리는 모양이다. 그러니까 비율로 따져도 3대 7이 되는 셈이다. 스포츠경기 하나도 평화롭게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처지에 무슨 지역감정 해소인가? 야구경기에서 나온 결론은 이렇다. 야구공을 방망이로 때려 홈런을 날리는 경우 이를 즐기려 운동장을 찾아간다. 야구경기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이에 대해 필자에게 두 가지 평이 날아왔다. 단순한 운동경기 치고 거창하게 지역감정과 연결시키는 건 비약이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반면 야당의 당수가 대전에 왔다가 독설가를 만났다고 한마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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