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재권 한국은행 대전·충남본부장 |
은행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했는데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쉽게 알 수 있다.
은행 'bank'라는 단어의 어원은 중세 이탈리아 베니스와 제노바 등에서 상인들이 야외 걸상 위에 앉아 거래했던 것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에 따르면, 초기 자본주의의 요람인 이탈리아는 13세기 초만 하더라도 수많은 도시국가로 나뉘어 있었고, 다양한 화폐와 동전을 사용하는 등 통화제도가 복잡했다고 한다. 또 이 도시국가들은 주기적으로 전쟁을 벌였으며 고용한 용병들에게 임금을 내기 위해 주민들에게 강제적으로 돈을 빌리곤 했다. 이러한 화폐교환 및 대부활동 수요에 대해 상인들은 적어도 7종류 이상의 통화를 잘 알고 있어야 손해를 보지 않고 거래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중세 유럽 교회는 공식적으로 이자를 금지했다. 이자를 받는 것이 죄악시됐는데, 이는 성경 구약에 '가난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줬을 경우 이자를 받지 말라'고 나와 있는데 비롯됐다. 또 가난한 이웃이 생필품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빌리는 경우 이자를 받지 말고 빌려 줘야 한다는 믿음이 있었다. 중세 대표적인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자는 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노동하지 않고 시간만으로 돈을 버는 것이므로 죄악이라 했다. 인간이 노동하는 목적은 이익을 증대시키는 것이 아니라 신에 의해 창조된 인간 상태를 유지하는 것. 즉, 천국에서 참된 영생을 바라는 것이므로, 부를 추구하는 행위는 욕심과 동일시해 큰 죄악으로 여긴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은행들은 이자를 받으면 안 됐지만 이자수입 없이 운영될 수 없던 은행들은 이자를 계산함에 있어 온갖 꼼수를 숨겨놓았다고 한다. 또한 교회가 원칙적으로 고리대금업을 금지했기 때문에 큰돈을 가진 투자자들은 수익을 회계장부에 일정 이자율로 받은 것으로 기입하고 상당 금액을 누락시켰다. 이로 인해 은행의 이중적 도덕성이나 위선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확대 재생산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버드 대학에서 중세 유럽경제사를 가르쳤던 경제사학자 레이몬드 드 루버는 중세에 이자가 금기시되지 않았다면 초기 은행의 역사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같은 부정적 이미지는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유명한 대표적 희극인 '베니스의 상인'에 의해 각인됐다. 사악한 유대인 고리대금업자인 샤일록은 친구를 위해 돈을 빌리려는 안토니오에게 돈 3000 듀카텐을 빌려 주면서 담보로 심장에서 가장 가까운 부위의 살 1파운드를 요구한다. 시대적으로 이자도 받지 말라고 하는 상황에서 사업적으로 갈등 관계에 있는 안토니오를 죽이려고 목숨을 담보로 돈을 빌려 준 것이다. 요즘 사채업자들이 돈을 갚지 못한다고 장기를 떼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이 작품은 1605년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는데, 극중 샤일록의 행동으로 유대인들은 무자비한 고리대금업자의 이미지로 낙인 찍혔고, 금융인에 대한 전반적인 인상도 부정적으로 고착화됐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금융업의 발전이 사실상 유대인에 의해 주도됐다는 사실은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아이러니하다.
막대한 규모의 은행 수익은 고객인 가계와 기업의 부담에서 창출됐다는 점을 깊이 인식할 때, 소외계층에 대한 대출 확대 등 사회적 책임경영을 강화하려는 은행들의 움직임은 그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 상황이다. 그간 홍보·이벤트 또는 단순 기부 방식으로 이뤄져 왔던 은행권의 사회공헌활동이 진정 서민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는 방향으로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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