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예순 한번째를 맞는 중도일보의 역사는 대전ㆍ충청지역 발전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전ㆍ충청의 발자취를 함께 만든 산증인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다.
1951년 8월 창간호를 통해, 중도일보가 내세운 기치는 '지역사회 개발과 인권보호'였다. 사시(社是) 역시 언론정신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엄정중립과 신속 정확에 이어 지역사회개발을 3대 사시에 포함할 만큼, 중도일보는 지역사회 발전의 청사진을 제시해왔다.
▲대전ㆍ충청발전의 청사진 주도=6ㆍ25전쟁 후 중도일보는 본격적인 지역사회개발이라는 역사적인 과업에 착수했다. 당시 그 누구도 꿈꾸지 않았다.
정부청사대전유치추진위원회, 충청지역개발협회, 계룡산국립공원개발협회, 금강주류-서해안개발추진위원회, 충무체육관건립추진위원회, 농민의집건립추진위원회, 대천선-조판선-대전공작창유치추진위원회, 충청남도종합개발추진위원회, 대전교육대학설립추진위원회, 아산만지역개발공사, 대전고법-고검추진위원회, 대전공업단지추진위원회, 대전천도추진위원회, 서해안조력발전추진위원회, 비인임해공업단지추진위원회, 충청은행설립추진위원회 등은 모두 중도일보의 역점사업이었다. 불가능한 헛된 꿈이라고도 했다.
하지만, 중도일보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묵묵히 갈 길을 갔다.
▲꿈은 이루어지다=숱한 난관이 많았다. 성사되면서 지역발전의 역사를 한층 앞당긴 의제도 많지만, 아쉬움이 남는 사업도 적지 않았다. 우선, 중도일보는 농협 설립을 제안했다. 1956년이었다. 그 해 9월 중도일보에는 2회에 걸쳐 '농업금융이 절실하다'를 주제로 여론을 조성했다. 5년 후 농협은 탄생했다.
1961년 '충남대 국립이관을 조속히 실현하라'는 사설은 국립 충남대 대전 유치라는 꿈을 실현하게 했다. 1967년 7월 22일과 23일 정부청사 대전 유치와 대전고등법원 유치를 촉구하는 기사가 잇따라 실렸다. 25년이 넘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중도일보의 선견지명은 결국 정부대전청사와 대전고법을 유치하는 단초를 제공했다. 계룡산 국립공원 승격을 위해선 당시 이웅렬 사장이 추진위원장을 맡아 계룡산의 역사와 사찰, 생태계를 조사해 집대성해 결국 현실로 만들었다. 금융분야에선 충청은행 설립이 대표적이다. 1967년 이웅렬 사장은 발기인 대표를 맡아 지역은행 설립에 나섰다. 막대한 자본금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문제에 직면하면서 주춤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김종희 한국화약 대표와 최준문 동아건설산업 회장 등 충청출신 재경실업인들의 주식 인수를 이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결국 1968년 2월 창립총회를 연 뒤, 같은 해 4월 22일 향토은행인 충청은행은 역사적인 닻을 올렸다.
▲중도(中都)시대를 예견하다=중도일보가 꿈을 실현한 시대적 과제 중 가장 으뜸은 바로 '중도(中都)시대'를 예견했다는 것이다. 중도일보(中都日報)라는 제호에서 보듯 중도(中都)시대 실현을 갈망했던 중도일보는 1966년 대전천도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1966년 5월 27일 자 '대전 천도를 제안한다'는 사설을 통해 '대전천도론'에 본격적인 불을 지폈다.
당시 이 제안은 정치권에도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부처와 집권여당 등도 관심을 두며 공주 장기면 주위를 후보지로 검토해 볼 정도였다. 1971년에는 김대중 신민당 대선 후보가 '대전 부(副)수도론'을 제안하면서 전국적인 이슈로 떠올랐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9년 본보 창간 48주년 특별회견에서, 당시의 기억을 언급하기도 했다.
당시 김 대통령은 “1971년 대선 때 대전을 행정부수도로 할 것을 선거공약으로 내놓았는데, 이웅렬 회장만이 이를 지지하는 바람에 정권의 미움을 받아 고생을 많이 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발언했다. 이후 1985년 군사정권 시절, 행정수도 건설 계획이 검토됐지만, 실현 단계로 접어들지 않으며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러다가 정부산하 청단위 기관인 정부대전청사가 개청하면서 중도시대의 시발을 알렸다. 정부는 1989년 1월 수도권대책실무기획단을 발족해 1990년 대전일대에 정부 3청사 이전을 결정하고 1993년 9월 착공, 1997년 12월 정부대전청사를 완공했다.
중도시대가 다시 등장한 건 2002년 대선이었다. 당시 노무현 민주당 대통령 후보는 신행정수도 건설이라는 공약을 발표했다. 수도권을 제외한 충청권 등 모든 지방에서 공감대를 얻으며 참여정부가 출범하게 됐다. 신행정수도 건설이 대두한 이래 중도일보는 2004년 12월에는 이틀에 걸쳐 9만 부의 행정수도 이전 특집 타블로이드판을 발행하는 등 국가균형발전과 지방분권의 가치를 지키고자 혼신을 다했다.
중도일보의 예견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2012년 7월 1일 신행정수도 격인 세종특별자치시가 공식적으로 출범하면서 현실이 됐다.
▲이젠, 지방분권ㆍ지방화 시대=중도시대의 또 다른 의미는 바로 지방화 시대다. 조선왕조 이후 무려 600년 가까이 수도였던 서울은 우리나라의 모든 역량이 결집한 곳이다. 다시 말해 이미 포화단계를 넘어섰다는 얘기다.
이젠 국정 의제의 핵심은 지방이어야 한다. 서울과 수도권 집중의 폐해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는 지금, 대안은 지방이다. 한곳에 모인 국가적 역량을 분산해 국가의 잠재력을 효율적으로 발휘할 시대가 다가온 것이다.
61년 전 지역사회 개발을 기치로 내걸며 충청발전이라는 한 길을 걸어온 중도일보에 내려진 또 다른 과제는 지방화다.
중도일보는 세종시의 안정적인 정착과 함께, 대전과 충남, 충북 등 충청권을 중심으로 지방화 시대의 새 모델을 창출할 것을 약속한다.
윤희진 기자 heeji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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