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중겸]아버지와의 전쟁에 대하여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김중겸]아버지와의 전쟁에 대하여

[논단]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승인 2012-08-23 14:18
  • 신문게재 2012-08-24 20면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 김중겸 전 충남지방경찰청장
광화문에서 타고 종로5가에서 내렸다. 한 5분 걸으면 연건동 아버지 사무실. 10분가량 더 걸으면 이화동 집이었다. 중학교 통학코스. 방과 후 집에 가다 연건동에 들르곤 했다.

바로 옆은 공장. 아버지는 일손이 부족하면 고향사람을 불러다 썼다. 자연스레 충남 서천군 연건동 지회 같은 분위기였다. 공장이 서울의 망월리. 선소부락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다.

원체 과묵하신 아버지. 말씀 없으셨다. 반응이야 있으셨다. 그건 얼굴 전체로 번지는 조용한 웃음. 순백의 미소. 일품이었다. 멋지다는 생각 많이도 했다.

그런 분이 어느 날 저 앞에 같이 가자 하셨다. 중학교 2학년 때다. 간 곳이 어디였는가. 그만 놀라 자빠질 정도였다. 효제 역도 체육관. 관장과는 미리 얘기가 된 듯 했다. 병약한 건 아니었다. 병 별로 걸리지 않고 자랐다. 그런데 공장사람들이 맨 날 공부만 하면 되겠냐. 운동도 좀 시켜라 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결심하시고 데려간 터였다.

본디 즐기지 않는 운동. 계속할 의지 있을 리 없다. 아버지 체면 생각해 체육관 개근상만은 타기로 작심. 가기는 가되 농땡이 부린다. 드는 시늉 조금 한다. 이내 벤치에서 쉰다. 관원이라야 서너 명. 관장은 많은 시간을 나한테 할애한다. 더 죽을 지경이다. 갈수록 흥미 잃었다. 관장도 드디어 이해했는가. 아버지께 말씀드렸다며 오지 않아도 된다 했다. 이 역도 체육관 다니기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명시적으로 원했던 첫 번째 희망이었다. 무산된 다음 아버지는 아무 말씀 없으셨다. 나도 뭐 크게 잘못했다는 생각이나 느낌은 없었다.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두 번째 희망사항은 무엇이었나. 대학진학 때 학과 선택이었다. 법과대학을 원하셨다. 아들은 고집 부렸다. 거긴 안가겠다고 저항했다. 문리과대학으로 원서 썼다.

말씀도 드리지 않았다. 시험 보던 날 아버지가 동숭동 문리대교정에 계셨다. 창 너머로 아들 바라보시던 그 눈. 걱정과 기대가 반반? 그 모습을 어찌 잊겠는가.

중학교 시험은 그렇게 보지 않았다. 담임선생님과 어머니가 상의하여 원서 낼 학교를 정했다. 입학시험 치러 갈 때는 아버지가 나섰다. 아버지는 출발 전에 신경안정제를 먹이셨다.

이화동 집에서 신문로 학교까지는 택시를 태우셨다. 상상해 보시라. 1959년에 택시를 타다니. 이건 얼마나 큰 지출이었겠는가. 그리고는 교문 밖에서 시험 끝나기를 기다리셨다.

시험 끝나고 종로통 그 유명한 중국집 갔다. 짜장면 먹이셨다. 까칠한 입에 짜장면만한 게 있겠느냐 하셨다. 아들 손 이끄셨다. 그런 분이셨다. 아들의 전쟁 대상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입시 때는 영 달랐다. 머리 커졌다고 건방떨었다. 내 인생 내가 결정한다? 아버지를 내 인생에서 조금 소외시켰다. 결단코 아버지와 싸우려는 게 아니었다.

몇 년 지나 육군 입대. 제대 석 달 앞두고 아버지가 병 나셨다. 뇌졸중. 한 달을 병상 지켰다. 내내 의식불명. 스물 네 살의 아들은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려고 했다.

아버지 옆에서 수없이 되뇌고 되뇌었다. 아버지! 나, 정말 아버지 좋아했습니다! 정말 좋아했습니다. 외치기도 했지만 과연 들으셨는지? 들으셨으리라 믿고 산다.

해마다 한 여름이면 아버지 기억해낸다. 줄곧 병상에 누워계셨던 아버지 회상하곤 한다. 이럴 즈음 어머니와 아버지를 비명에 잃은 여성의 출전소식 듣는다. 박근혜 후보다. 박근혜 후보에게는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이 계신다. 나는 그 분 시대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렇기에 안다. 박정희 대통령이 없었다면 아직도 굶주리는 나라였을 거라고 확신한다.

그러나 폄하하는 세력이 의외로 많다. 박근혜 후보에게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은 짐이 되고 말았다. 딸이 아버지와 아버지의 이념과 치적을 평가하고 정의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 후보의 대선은 아버지와의 전쟁이다. 회피하면 패배. 풀고 가면 승리. 딸의 대선승리는 아버지의 원혼을 달래는 기회이기도 하다. 역사의 물음에 답 쓰는 때 도래한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2.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3.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4.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