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월산 전경 |
*위치:연기군 남면 양화리
▲세종시의 주산 전월산=1번 국도를 타고 세종시 남면과 금남면을 잇는 금강의 금남교를 지날 때 또는 세종보 등 금강 주변에서 동쪽 장남뜰 건너에 홀로 우람한 산 하나를 볼 수 있다. 그 산이 전월산이다.
지금 연기군 남면 금남면 일대는 세종시(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공사로 한창 바쁘고 시끄러우며 땅은 온통 파헤쳐져 있다. 그러나 전월산은 공사현장들을 내려다보며 예나 지금이나 의연히 서 있다.
전월산은 금강이 산의 남쪽과 남동쪽을 휘감아 돌고 서쪽은 넓은 들이며 북서쪽과 북쪽은 낮은 산이 있지만 작은 골짜기가 전월산과 선을 긋고 있다.
그래서 전월산은 비래산(산줄기가 다른 산과 이어져 있지 않은 독립된 산)에 가깝다. 채 300m가 안 되는 낮은 산이지만 금강을 끼고 있는 비래산이기 때문에 덩치가 커 보이고 우람하다.
우리는 전월산에 올라 여러 가지 아름다운 경관과 신기한 장면을 두루 둘러보았다. 전월산은 곳곳에 큰 바위가 있고 깎아지른 바위벼랑도 있으며 신기하게도 고스락에 가까운 등성이에 샘도 있다. 그 바위들과 샘에 전설이 있고 유래가 있다. 숲도 짙다.
우리는 우선 옛 양화마을의 끝자락인 산의 왼편, 서쪽으로 나아간 가지 줄기를 타고 올라 주릉에 이른 뒤 북쪽으로 나아갔다. 주릉을 조금 더 나아가 서쪽이 높은 낭떠러지로 되어 있는 바위를 만났다. 여기가 부안 임씨의 양화리 입향조 임난수가 멸망한 고려왕조를 그리워하고 엎드려 절한 상려암과 부왕봉이었다. 이 부왕봉에서 금강 계룡산 등 서쪽 조망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부왕봉에서 남쪽을 향해 등성이를 타기 시작했다. 숲속이어서 조망은 할 수 없었다. 20여 분이 지나 남쪽의 조망이 열린 시원한 고스락에 이르렀다.
고스락에서의 조망도 좋았다. 특히 계룡산의 조망은 일품이었다. 계룡산은 전월산의 산자락 어디서나 잘 보였다.
▲며느리 바위 |
여기서 서쪽으로 금강을 따라 뻗은 등성이를 타고 또 20여 분을 가니 그 유명한 전설의 바위 '며느리 바위'가 길가에 있었다. 길은 '며느리바위'를 지나 계속 내려갔다. 얼마지 않아 우리는 옛 양화마을의 남쪽 끝 자락이 되는 금강에서 가까운 마을 고샅에 내려서 산행을 마쳤다.
▲전월산의 이름과 원수산=전월산(轉月山)의 이름은 달이 전산산을 둥글게 돌아 또는 한 바퀴 돌아 오르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전월산 바로 건너에는 고려 말 충열왕 때에 인후 한희유 김흔 삼장군이 우리나라에 침입한 몽고의 반란군 합단군을 섬멸한 전적지 원수산(254m)이 있다. 삼각봉으로 뾰족해 알아보기 쉽다.
▲전설의 산 전월산=양화리 일대에서는 수려한 계룡산의 모습이 잘 조망되고 앞에 너른 들이 있으며 금강이 가까이에 있어 사람 살기에 아주 좋은 터다. 그래서 부안 임씨의 양화리 입향조(그 고장에 처음 들어와 터를 잡은 조상) 임난수는 이곳에 터를 잡았다.
고려 충신으로 탐라 정복에 공을 세운 임난수는 조선조가 창건되자 두 임금을 섬기지 않으려고 이곳에 내려와 터를 잡았던 것이다. 임씨들은 그 뒤 600여 년 양화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살아 왔으나 이제 세종시가 들어서게 되었다.
그러나 지명 등은 그대로 지켜지며 세종시가 조성된 뒤 다시 재입주하는 기회도 있기 때문에 양화리 마을이 없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난수가 심은 것으로 알려진 거대한 은행나무(천연기념물) 두 그루와 숭모각 등 사당 그리고 임난수가 아침저녁으로 북쪽 고려의 왕도를 향해 예를 올리고 모셨던 왕을 그리며 상념에 젖었던 전월산의 부왕봉(俯王峰)과 상려암(想麗巖) 그리고 용천(龍泉)은 그대로 자리를 지킬 것이다.
그 밖에 재미있는 전설을 가진 전월산의 용천과 버드나무, 며느리바위 등 도 전월산과 함께 남아있을 것이다.
고스락 가까이에 용천이라는 둥근 샘이 있고 샘 둘레에는 버드나무가 한 무더기 자라고 있다. 금강과 통하고 있다는 이 샘에 이무기 한 마리가 금강에서 올라와 오랜 동안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어느 날 하늘의 허락이 떨어져 하늘로 오르고 있는데 강 건너 반곡 쪽에서 임신부가 그 걸 보는 바람에 하늘로 오르지 못하고 떨어져 샘가의 버드나무가 되었다.
▲용샘과 버드나무 |
며느리바위의 전설은 두 가지가 있다.
둘 다 애절한 사연으로 되어있다. 하나는 고약한 부자가 시주를 청하는 중에게 심술궂게 거름 한 삽을 바랑에 넣어주며 쫓아냈다.
그걸 본 착한 며느리가 쌀을 퍼들고 중을 따라가 잘못을 빌며 시주했다. 그러자 중은 '내일 모래 전월산을 올라가되 뒤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던 되돌아보지 말라'고 단단히 일렀다.
중이 일러준 날 며느리는 전월산을 올랐다. 중턱 쯤 오르자 천둥 번개기 치며 억수같이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마을이 궁금했으나 그냥 오르는데 갑자기 시아버지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저도 모르게 되돌아보니 마을은 물바다가 되어있고 시아버지가 물에 쓸려 떠내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 며느리는 그 자리에 바위가 되었다 한다.
또 하나의 이야기는 골말에 역적의 누명을 쓰고 있는 선비의 집안에서 부인이 아들 하나를 데리고 열심히 살아가고 있었다. 역적의 누명이 벗겨지자 아들이 또 한양으로 갈 것을 걱정해서 명신의 후예 집안에 장가를 들였으나 장가든 다음날 아들은 한양으로 떠났다.
그 뒤 곱게 자란 착한 며느리와 길쌈을 하며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데 어느 날 금부도사가 들이닥쳐 역적의 가족이라며 꿇어앉히고 사약을 마시게 했다. 사연이나 알고 죽겠다는 어머니의 말에 아들이 임금의 하는 일에 반대하는 언행을 하고 나라를 망치게 하려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바로 아들이 바르게 충간을 하다 임금의 노여움을 샀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과연 우리 아들이 장하다. 옳고 그름을 분명하게 아는 아들이니 바른 말을 했다' 하며 사약을 마셨다. 옆에 있던 며느리도 사약을 마시고 함께 죽었다.
어느 비오는 날 전월산 기슭에 바위가 솟아올랐다. 그 바위는 명주를 짜는 부녀자의 형국인데 큰 바위가 더 큰 바위를 얹고 있는 것으로 길쌈을 하는 모양 같기도 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추켜세우고 있는 모양 같기도 해서 '며느리바위'라 부른다는 것이다.
*이상의 내용들은 '연기의 산 이야기(조치원 문화원 발행)' 전월산 편을 참고했으며 내용 그대로 옮기기도 했다.
▲산행 길잡이
산신각 길:골말(양화리)~산신각~등성이~주릉 삼거리~상려암~고스락~용샘 (약 1시간)
며느리바위 길:동촌~산제당~삼거리~며느리바위~용샘~고스락(약 1시간)
참고=산신각 근처에서 며느리바위 아래 삼거리로 오르는 길도 있다.
교통=연기군에서 1번 국도가 금강을 건너는 다리가 금남교다. 금남교를 북쪽 조치원 방면으로 건너면 바로 96번 지방도가 금강을 따라 동쪽으로 달린다. 전월산을 앞에 두고 한 가닥 길이 들을 가로지른다. 바로 전월산 자락에 있는 양화리로 들어가는 길이다. 전월산은 금강가에 따로 우람하게 솟은 산이어서 알아보기 쉽다.
조치원에서 군내버스가 6회(6:30, 8:00, 10:45, 13:10, 16:50, 20:00) 있으며 양화리에서는 7:00, 8:30, 11:00, 14:00, 17:20, 20:20. 조치원으로 돌아간다.
참고=세종시의 건설공사로 공중교통 편이 바뀔 가능성이 많다. 사전에 확인이 필요하다.
▲조망
북:동림산, 봉부산, 작두산, 양성산.
동:샘봉산, 계족산, 환산, 식장산, 보문산.
남:우산봉, 장군봉, 계룡산, 묵방산, 구절산.
서:무성산, 국사봉, 봉수산, 광덕산, 운주산, 흑성산.
▲챙겨보기
용샘과 버드나무=전월산의 고스락에서 서남 쪽으로 가까운 곳에 샘이 있고 샘 둘레에 버드나무도 볼 수 있다. 골짜기의 막바지 높은 곳에는 더러 샘이 있지만 전월산에서처럼 고스락 가까운 곳에 샘이 있는 경우는 드물다. 샘은 옛날 마을 사람들이 물을 길어 마셨던 샘같이 돌을 둥글게 쌓아 올려있고 샘 저 아래에 물이 고여 있다. 두레박이 있어야 물을 길어 올릴 수 있다. 이 샘은 금강과 통해져 있다 한다. 그래서 금가에서 올라온 이무기가 정성을 다해 하늘로 올라가게 되었으나 강 건너 반곡마을 아낙네로 인해 다시 샘으로 떨어져 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 것이다.
이무기는 봉곡마을 여자들을 해치기 위해 샘가에 버드나무가 되고 버드나무가 커서 봉곡마을에서 넘겨다보이면 봉곡마을 여자들이 바람이 나게 했다는 것이다. 샘과 버드나무, 옛날에는 '노류장화'라 해서 길가에 서있는 버드나무와 담장 아래 꽃은 기생을 빗대 말했다.
전월산 산행에서 여기 전월산 고스락(정상)의 용샘(용천)과 버드나무를 챙겨 보는 것도 재미있다. 샘도 그렇지만 버드나무도 산 높은 곳에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김홍주 소장 |
1932년 금산 출생. 42년간 교단에 서오다 1997년 퇴직한 뒤 산행문화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산행을 주제로 한 저술활동으로 '한밭 그 언저리의 산들', '한국 51 명산록', '조망의 즐거움', '산행문화와 웰빙 라이프'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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