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원 국립대전현충원장 |
현충관에서는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명예를 선양하기 위해 1일 합동안장식이 거행되고 있다. 유가족들이 자랑스러운 아버지, 남편,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을 위해 맨 처음 마주하게 되는 곳으로 종교의식, 헌화와 헌시 낭송 등의 의식이 거행되며 영정사진과 유골함을 끌어안고 그리움에 눈물 흘린다. 또한 현충관 앞에 수호신상처럼 서 있는 거대한 분홍색 꽃나무를 보면 고인의 영광스런 영예와 아름다운 곳에서 영면하게 된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다. 만개한 선홍빛 꽃송이들을 헤치고 배롱나무에 한발 두발 가까이 다가가 보면 껍질이 벗겨져 있는 기둥을 발견하게 된다. 마치 거짓과 허울을 모두 벗어던진 탈속자의 모습과 닮았다.
그래서일까. 예로부터 선비들은 배롱나무를 향교나 서원, 집 뜰에 심고 가까이하며 청렴의지를 다지고 관직에 나가더라도 청백리를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고 한다. 우리 조상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로 청렴을 꼽았다. 청렴은 맑을 청(淸)과 청렴할 렴(廉)이 합쳐진 말로 사전적 의미를 보면 '성품과 행실이 높고 맑으며, 탐욕이 없음'을 나타내는데 공직자의 기준으로 말하면 개인적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공평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청렴은 옛날 청백리에서 유래했다. 청백리는 조선시대 선정을 위해 청렴결백한 관리를 양성하고 장려할 목적으로 시행한 표창제도로 청렴하고 근면한 관리인 염근리(廉謹吏)와 청백리에 선정된 사람을 말한다. 생존 시 염근리에 선정된 사람은 본인에게 재물을 내리거나 관직을 올려주고 적장자나 적손에게 재물을 주거나 관직에 등용하였다. 청백리는 사회적으로 존경받고 관리에게 올바른 자세를 일깨우며 탐관오리에게 자극을 주어 정화하는 기능을 발휘했다.
'청백리'하면 떠오르는 것이 있는데 백비(白碑)다. 비석에는 글자가 쓰여 있어야 하는데 하나의 글도 쓰여 있지 않은 비석이 백비다. 글자 없는 비석을 비석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석재를 비석모양으로 잘 다듬어 무덤 앞에 세워놓았으니 비석이긴 하다.
이 백비는 조선시대 명종이 세우라고 지시하여 전남 장성 박수량 묘비 앞에 세워졌다. 박수량은 조선시대 3대 청백리 중 한 명으로 호조판서까지 역임했으나 너무 검소해 세상을 떠났을 때 상여를 멜 돈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이에 명종이 비를 하사하며 “그의 청렴함을 비에 쓴다는 것은 오히려 그의 청렴함을 잘못 아는 결과가 될지 모르니 비문 없이 그대로 세우라”고 명해 백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전남 장성에 세워진 백비는 백성을 살찌우는 참다운 청백리 정신이 무엇인지 후세대에 표상이 되고 있다. 부정부패와 비리를 근절하고자 우리는, 뜰에 배롱나무를 심고 청백리 의지를 다졌던 조상들의 청빈한 마음과 박수량의 백비를 되새기면서 청렴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공정하고 선진화된 사회를 만들려면 청렴이 국민의, 공직자의, 청소년의 마음속에 깊이 뿌리내려야 한다. 부정부패 없이 약자에게도 기회가 균등하여 경쟁력 있는 밝은 사회를 만들려면 청렴하고 공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오늘 현충관 앞에 활짝 핀 배롱나무처럼 청렴의 꽃이 대한민국에도 활짝 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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