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섰다! 섰다! 섰어!”
남근형(phallic) 목간에서 찾은 남근숭배(phallicism) 흔적.
글을 적는 나뭇조각인 목간(木簡)은 과거를 푸는 비밀의 바코드다. 부여 능산리 남근형 목간에 쓰인 '…立立立'의 해석에 대해 필자는 '섰다! 섰다! 섰다!'를 고집한다. 발기 상태의 남근형 목간에서 남근숭배를 추출하는 게 뭐 망칙한가.
잠시 타임머신을 탄다. 갸름한 남근 모양 물건<사진>이 있다. 이걸 수도의 대로 초입에 걸고 “자, 섰다! 잡귀야 썩 물러가라!”며 도성의 안녕을 기원한다. 부여 쌍북리에서는 왜인들이 바삐 오간다. 오사카의 지명과 '무라지(連)' 성씨가 적힌 쌍북리 목간은 일본의 대(對)백제 교류를 웅변하는 화물운송장이다.
선화공주와 서동의 이야기가 서린 동남리 궁남지에서 찾은 목간도 있다. '西部後巷巳達巳斯丁(서부후항사달사사정)'. 서쪽 부의 북쪽 항(주소), 사달사사(이름), 나이 21세 이상(=丁). 단지 31글자로 부여가 5부5항의 바둑판 꼴 마스터플랜 식 계획도시였음을 생생히 밝히고 있다. 백마강을 자연 해자(垓字) 삼고 성을 두른 도시, 관북리의 곧게 뻗은 남북과 동서도로, 수레바퀴 자국까지 신도시 부여를 뒷받침한다.
시간을 한참 뒤로 돌린다. 정조 때의 계획도시 화성은 에베니즈 하워드의 전원도시 개념보다 199년 앞섰다. 조선의 행정도시 및 상업도시 화성은 세종시를 생각하게 한다. 세종시도 환상형(環狀型) 계획도시다. 스페인 건축가의 응모작 '1000개의 도시' 개념이 일부 적용돼 도심을 기준으로 동심원을 이룬 고리 모양이다. 세종시가 된 공주시의 일부만 뚝 떼어놓고 538년 부여 천도 시점까지 역산하면 1474년 만에 '수도'로 부활했다. 그렇게 볼 수 있다.
천도란 역사를 회고하면 나라의 중심축 바꾸기다. 수도 함락이 아니면 힘들었다. 백제의 공주(웅진) 천도도 공산성 왕궁지가 천도 이전에 닦여 왕권 강화용 수도 이전[別都] 기미는 있었지만, 고구려 장수왕의 한성 함락 뒤에 성사됐다. 평시의 고구려 국내성 천도는 예외적이다. 그때도 반대론자 입김은 셌다. 천도 명분이던 '백성을 편안케 해 나라를 굳게 함(欲安民而固邦業)'에는 '국가균형발전'으로 돌파한 세종시 기시감이 있다. 신라는 수도 함락 경험이 없는데다 수도 기능을 보완하는 소경제 덕에 천도의 필요성은 덜했다.
세종시는 천도는 아니지만 소경(小京), '작은 서울'로 끝나지 않고, 늦어도 세종시 탄생 타임캡슐의 봉인이 열릴 2030년엔 세종시가 한국의 얼굴이 되길 고대하고 싶다. 기록 수단이 많지만 타임캡슐은 일종의 목간이다. 立立立! 세종시여, 서라! 서라! 서라! 기록문화의 꽃인 백제 목간을 빌려 원초적인 주문을 건다.
최충식·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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