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표 대덕대 총장 |
거기다 우리네 국민의 대표라는 사람들은 잘 해보자고 약속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인데도 늑장, 방탄에 헌금 스캔들도 모자라 막말 파문까지 도대체 언제까지 고만고만한 싸움질을 지켜보아야 하나 국민들은 참으로 짜증스럽다. 차라리 국가의 장래, 국민의 행복을 위한다는 말이나 하지 말지.
국민의 대표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얼굴 찌푸리는 일을 벌이고 있을 때 우리 국가대표들은 세계를 향하여 한국인의 혼과 열정으로 정정당당하고 유감없는 투혼을 발휘해 진정한 스포츠 정신과 우수성을 알렸다. 대한민국의 격을 높이는 한편 국민을 하나로 묶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감동 드라마 그 자체를 연출했다. 부상으로 눈이 부어 앞이 보이지 않아도 한 눈으로 들어 메친 후 “나보다 땀을 더 많이 흘린 사람은 메달을 가져가도 좋다”면서 하루에 12t을 들어 올리는 담금 질을 했다는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급 김현우를 비롯하여, 인대가 끊어지고, 살이 찢겨져 선혈이 낭자해도, 몸 한구석에 철심이 박혔어도 혼을 다 바쳐 연습을 실전처럼 자기와의 싸움을 이겨낸 인간승리 그 자체가 아닌가. 메달을 일구지 못한 사람도 최선을 다하여 쏟아내는 혼이 있었기에 더욱 아쉬웠다. 뿐만 아니라 패했다고 해도 혼을 불사른 사람만의 당당함이 묻어나는 메시지가 있어 그렇게 자랑스럽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비록 선풍기에서 더운 바람이 나와도 그 때마다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맛보면서 열대야를 행복하게 보낼 수 있었다.
우리가 뽑았지만 신선하다 싶고 국민을 보면서 할 일 열심히 하겠거니 했던 사람도 너나없이 그 현장에 가면 감동은 고사하고 무엇 때문에 있는지 조차 알 수가 없게 된다. 요지경 속이고 좋은 사람 버리는 것만 같아해안타까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세상은 계속 변화하고 진화 하는데 다른 사람과 같은 생각, 같은 행동만 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나로 남아있는 차별화로 국민을 위하는 나만의 전략을 구사해야 존재이유가 있고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차별화는 창조적인 나만의 브랜드를 만드는데서 찾아야 한다.
체조의 양학선은 자신이 개발해서 자신만이 최초로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최고난도의 기술을 양1(Yang 1)이라는 이름으로 한 폭의 그림처럼 연출 해냈고 “깃털이 나는 것 같은 느낌을 느꼈다”고 하면서 붕어탕을 끓여주시던 비닐하우스의 어머니를 떠올렸다고 했다. 그만의 성취감 속에서 앞으로 다른 사람들이 양1을 연습하고 익힐 때, 양2로 또 다시 최초의 오직 하나가 탄생하리라고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한 때 방황하는 가출 청소년이기도 했던 그가 부모님을 어떻게 하면 편하게 해드릴까 고민하면서 했던 일련의 행동들이나 고난도의 기술을 익히고자 했던 과정들은 교과서에 담길만한 내용으로 감동 그 자체다.
그뿐인가. 한 시간 같은 1초의 초침 멈춤 오심으로 울어야 했던 신아람 선수를 비롯한 펜싱 선수들도 약점을 강점으로 보완한 우리만의 독특한 브랜드가 있었기에 다리 길고 팔 길은 서양사람 중심으로 만들어진 종목에서 불가능하다는 통념을 창의적인 훈련을 통해 가능으로 승화시켰다. 펜싱의 길이만 같고 신장, 팔, 다리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빠른 스텝, 전광석화 같은 동작으로 치고 빠지는 전법을 구사한 것이다. 스텝 수를 분당 유럽인들 보다 배가 빠른 80회 내외로 올리고, 그 빠른 스텝으로 초당 5m 내외를 움직여야 했다. 이렇게 되기까지 경험도 없고 예상도 못했던 혹독한 훈련의 과정을 소화해야 했으며, 이들은 모두 인간한계를 넘나드는 것들 이었다.
이외의 많은 종목들의 선수나 지도자들이 보여준 감동의 스토리는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특히 2002년 한·일 월드컵 8강전 스페인과의 승부차기에서 '실축을 하면 이민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다던 홍명보 감독의 진정성이 녹아있는 소통과 믿음의 리더십은 매사 국민을 앞세우는 국민의 대표라는 분들이 한 번쯤 되새겨 보아야 할 백미 중의 백미다. 2009년 2월부터 인연을 맺은 '홍명보의 아이들'은 한 식구처럼 대해주면서 훈련 때는 카리스마 넘치는 감독으로, 끝나면 옆집 아저씨 같은 편안함을 늘 느꼈다고 한다. “나는 너희들을 위해 등에 칼을 꽂고 다닌다” 군 문제로 한창 시달리고 있을 때 “박주영 대신 내가 군에 갈 수도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얼마나 훌륭하면 9살이나 연상인 대표 팀의 일본인 코치 이케다가 홍 감독을 '쇼군(將軍)' 모시듯 했을까. 이렇게 4강 신화 뒤에는 진정한 소통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국가도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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