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꽃닮은 성봉에 오르니 저 구릉마저 손에 잡힐 듯

연꽃닮은 성봉에 오르니 저 구릉마저 손에 잡힐 듯

바윗길 없는 흙길, 그늘 숲 즐비, 군데군데 가팔라 산행의 맛 '쏠쏠' 고승 나옹과 정도전이 짚은 명당, 태봉재에 이성계의 태실 복원해놔

  • 승인 2012-08-08 18:32
  • 신문게재 2012-08-10 9면
  • 김홍주김홍주
[충남, 내고향의 산]1.만인산(537m)과 성봉(580m)

만인산에 오르다 보면 사방으로 탁 트인 경관에 매료된다.
<br />사진은 만인산에서 바라본 서대산.
만인산에 오르다 보면 사방으로 탁 트인 경관에 매료된다.
사진은 만인산에서 바라본 서대산.

산행도 이제는 '값비싼 레저'라고 합니다. 고가의 장비는 물론 근교에 가까운 산을 오르면서도 수십만원 짜리 등산복을 챙겨 입는 요즘. 산행하면 먼 곳의 이름난 유명산들을 떠올리게 되지만 오히려 가까이 있기에 잊고 사는 산, 하지만 늘 그 자리에 있기에 마음의 의지가 되는 '고향의 산'들을 충남 지역별로 엄선해서 함께 돌아보려고 합니다. 금요일 격주로 게재되는 지면을 통해, 산행전문가의 따뜻하고 깊이 있는 시선으로 충남지역 고향의 산들을 돌아보는 '힐링'의 산행을 기대해봅니다.<편집자 주>

*위치=대전시 동구 하소동, 금산군 추부면ㆍ복수면

▲이름 그대로 만장의 낭떠러지가 있는 만인산=신증동국여지승람 진산군 편에 만인산에 관해 '군의 동쪽 20리에 있다. 성봉(星峰)이 있는데 땅은 두텁고 물은 깊다. 봉우리가 우뚝 솟아 연꽃처럼 생겼다. 태조의 태를 묻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대동지지 진산군 편에도 '동북 30리에 있다. 성봉, 땅은 두텁고 물은 깊으며 고스락이 뾰족뾰족 솟은 봉우리가 기이하고 빼어나다. 그 모습이 연꽃 같다' 라고 쓰여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대동지지가 만인산의 경관을 잘 설명하고 있다. 만인산의 한자 '인'의 뜻은 '높다', '깊다'의 뜻도 되고 한 길(질-사람의 키 정도)의 뜻도 있어서 만 길, 만 장(丈)이 되리 만치 높다는 뜻이다. 또 만인은 단애 즉 '깎아 세운 듯한 낭떠러지'의 뜻도 있다. 결국 만인산의 이름과 옛 문헌이 만인산의 경관과 산세를 잘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만인산은 말 그대로 긴 협곡을 이루며 양편의 산이 높이 솟아 있어 하루 해가 일년 내내 짧다. 이 만인산 봉수내미골은 대전천의 발원지다.

추부터널로 대전과 이어지지만 골짜기 아래의 가목정 마을까지 길고 좁은 온 협곡이 터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

만인산은 주봉과 상봉인 성봉 사이 긴 골짜기를 금산과 대전을 잇는 17번 국도가 지나고 있어 17번 국도를 사이에 두고 주봉과 상봉이 마주보고 있다. 이 만인산 주봉과 성봉의 중심이 되며 금산에서 대전으로 통하는 터널 앞(대전 쪽)에는 식사는 물론 여러 가지 간식 등 온갖 먹거리가 있는 휴게소도 있다.

산길은 바윗길이 없고 흙길이며 숲속 그늘이어서 내내 편안하지만 매우 가파른 곳도 여러 군데여서 산행의 맛도 쏠쏠하다. 산행시간도 2 시간, 3시간, 4시간으로 알맞게 조절할 수 있어서 좋다.

▲조선조 태조의 태실에 얽힌 이야기=터널이 뚫리기 전에는 추부에서 산내로 넘어가는 고개를 태봉재라 불렀다. 만인산에 조선조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있었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었다.

지금은 옛길의 고개 마루에 옮겨서 태가 없는 태실을 복원해 놓았다. 영흥(함흥) 태생의 태조 이성계의 태실이 만인산에 있게 된 연유가 재미있는 이야기로 그럴싸하게 부풀려져 전해지고 있다. 원래 이성계의 아버지 이자춘(뒤에 환조로 추존)은 영흥의 세력가로 원나라의 쌍성총관부의 관리였다. 원나라의 세력이 약해지자 고려 공민왕은 국토 회복을 꾀해 유인우로 하여금 쌍성총관부를 공격토록 했다.

이 때 이자춘과 이성계 부자는 쌍성총관부 안에서 고려군에 내응해 원나라의 쌍성총관부를 내쫓는데 공을 세웠다. 그 공으로 이자춘 이성계 부자는 고려조의 벼슬살이에 들어섰다. 따라서 이성계의 태는 당연히 영흥에 있어야 했다. 그 이성계의 태가 금산 땅 만인산에 오게 된 연유가 실화 비슷하게 전해져 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실과는 전혀 다른 점이 있어 하나의 전설로 여길 수밖에 없다.

고려 500년 동안은 지리도참설(풍수지리설)이 귀족사회에서나 서민사회에서나 크나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나 명당자리를 얻기 위해 많은 관심은 물론 정성과 노력을 쏟았다. 이자춘도 물론 명당을 얻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스님과 선비 두 사람이 길을 가며 저 자리는 어떻고 이 산은 어떻다며 지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우연히 그들 뒤를 따라 가며 지리 이야기를 들은 이자춘의 식객은 앞에 두 사람이 비범한 인물이며 지리에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생각했다.

이자춘이 명당을 얻기 위해 애를 태우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는 그 식객은 단숨에 달려가서 자기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이자춘이 바로 쫓아 나와 그 두 나그네를 집에 모셔다 놓고 연일 융숭한 대접을 했다.

알고 보니 그 두 사람은 당대 최고의 지리 전문가들로 스님은 고승 나옹(翁)이었고 선비는 뒤에 개국공신이 된 유학자 정도전(鄭道傳)이었다. 두 사람은 이자춘의 정성에 감복해 명당 한 자리를 잡아주고 이장의 절차까지 일러주며 이자춘에게 은밀히 당부했다. '이 자리에 당신의 아버지(이 춘, 뒤에 도조로 추존) 유골을 모시고 얼마가 지나면 왕이 될 아들을 낳을 것이다. 아들을 낳으면 저 연못 가운데에 태를 묻되 그 아이가 임금이 될 때까지 부인을 포함해서 아무도 모르게 하고 임금이 된 뒤 그 태를 옮기도록 하라'고 한 것이다. 그 태를 묻었던 연못이 영흥의 용연(龍淵)이다.

태조는 임금이 된 뒤 신하 가운데 지리에 밝은 권중화를 시켜 자기의 태 묻을 자리를 찾게 했다. 권중화는 서울서부터 남으로 내려오며 명당을 찾았다. 그 때 잡은 명당이 만인산의 태실자리였다.

권중화가 태실 자리를 찾으려 다니다 얻은 중요한 부산물도 있었다. 그 때는 조선조의 창건 초기여서 도읍(왕도)터를 정하는 일이 매우 중요했다. 권중화는 계룡산 일대를 돌며 신도안이 도읍터로 좋다는 것을 발견하고 계룡산 신도안 일대의 지형도를 그려 태조(이성계)에게 보내고 친히 내려와 살펴 볼 것을 건의했다.

태조는 그 지형도를 받고 내려와 계룡산과 신도안 일대를 돌아본 뒤 도읍터로 좋다며 도읍의 조성 공사를 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하륜이 신도안 도읍안을 강력하게 반대해 도읍으로 하려는 계획은 취소되고 1년 동안 진행된 공사도 중단했다. 그 때 공사를 하며 만든 큰 주춧돌이 지금도 신도안에 남아있다.

▲잘못 불려지고 있는 성봉의 이름=수백 년 전부터 내려온 권위 있는 고전 신증동국여지승람과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지리문헌인 대동지지에 만인산의 상봉인 성봉(星峰)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다. 만인산 란에 '성봉이 있는데 봉우리가 우뚝 솟아 연꽃처럼 생겼다'로 되어 있는 것이다. 이처럼 성봉이 특기되어 있는 까닭은 만인산의 주봉이 537m인데 비해 성봉은 580m로 40여m 높을 뿐 아니라 만인산 주봉 일대에 뚜렷한 봉우리가 없이 거의 평정봉(봉우리가 길게 평평한 것)인데 성봉은 그 머리가 둥글게 그야말로 연꽃처럼 뛰어나게 높이 솟아 있는 점이다. 그 때문에 서대산, 대둔산, 진악산, 계룡산, 식장산, 보문산 등지에서 이 성봉이 눈에 띄게 우뚝하게 보이는 것이다.

만인산 주봉은 낮은데다 평정봉이어서 먼데서 찾기가 어렵다. 한마디로 '연꽃'처럼 뚜렷하게 보이는 봉우리는 만인산 일대에서 성봉밖에 없다. 그런데 이 성봉에 엉뚱한 이름이 붙여졌다.

대전 쪽 푸른 학습원에서 만인산 일대를 개발하고 개념도 안내도를 내며 근동의 노인이 '정기봉'이라 했다며 모든 안내판과 기록에 성봉을 유래도 없고 뜻도 없는 '정기봉'으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푸른 학습원에서는 먼저 문헌부터 살폈어야 했다. 요즈음에야 문헌들을 보았는지 성봉에 대한 '연꽃' 설명을 엉뚱한 만인산 주봉 쪽에 세워놓았고 파묘자리인 듯싶은 만인산 주봉과 성봉 고스락의 파인 자리를 봉화대 흔적이라고 안내판에 써 놓았다. 하루 빨리 성봉이란 올바른 이름을 찾아야 한다.

▲산행길잡이

산 길과 들머리 산길의 중심은 기점과 종점이 되는 만인휴게소와 만인루로 오르는 별개의 길이 시작되는 제2주차장(만인 주유소) 두 곳이다. 두 곳 가운데 거의 모든 사람들이 휴게소를 만인산 산행의 기점과 종점으로 이용하고 있다.

▲휴게소 길:만인산 휴게소~만인루 갈림 길~만인루-만인산 주봉~태조 태실-푸른 학습원 갈림길~성봉(~푸른 학습원-휴게소) (산행시간 약 3시간)

-푸른 학습원 길:만인산 휴게소~푸른 학습원-성봉(~태실~만인산~만인루~휴게소)

-휴게소에서 푸른 학습원을 거쳐 성봉만을 다녀올 때는 휴게소~푸른 학습원~성봉~휴게소(약 1시간 30분)~태실에서 휴게소로 하산할 때는 태실-휴게소 (약 20분).

-제2 주차장길:만인산 주유소에서 만인산 주봉으로 오를 경우. 제2 주차장~만인루~만인산 (약 50분)

▲교통=금산에서 대전을 잇는 17번 국도가 만인산 주봉과 성봉 사이를 지난다. 대중교통 수단을 이용하려면 대전 역(열차) 앞을 지나는 501번 좌석 버스 520번 일반버스를 타면 된다.

각각 11분 80분 간격으로 다니고 있다. 승용차나 관광버스의 경우 17번 국도를 이용하면 되고 고속도로를 이용할 경우에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의 추부IC에서 빠져나와 17번 국도로 추부를 지나 대전 방면으로 가거나 남대전 IC에서 나와 역시 17번 국도를 이용하여 금산 쪽으로 가거나 만인산 휴게소로 갈 수 있다.

▲조망=가족과 함께 산에 올라 고스락에서 둘레의 산들을 챙겨보는 것도 재미있다.

북으로 식장산, 고리산, 속리산, 금적산, 구병산, 서대산, 달이산, 대성산.

동으로 마리산, 황악산, 천태산, 갈기산, 민주지산, 성주산, 적상산, 덕유산, 진악산, 성치산.

남으로 구봉산, 운장산, 백암산, 선야봉, 인대산, 천등산, 대둔산.



▲김홍주 소장
▲김홍주 소장
김홍주 소산(素山) 산행문화연구소장은?

1932년 금산 출신. 42년간 교단에 서오다 1997년 퇴직한 뒤 산행문화의 발전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 오고 있다. 산행을 주제로 한 저술활동으로 '한밭 그 언저리의 산들', '한국 51 명산록', '조망의 즐거움', '산행문화와 웰빙 라이프' 등을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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