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은주 목원대 사범대학 유아교육과 교수 |
여름철 동경 기후는 고온다습하고 인기테마관은 보통 1시간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들어갈 수 있었기에 자녀 대신 부모들이 줄을 서 주는 것은 큰 희생이 따르는 행동이었다.
우리 부모들은 자녀들과 미리 어느 어느 테마관을 둘러볼 것인지 계획하고 그 경로에 따라 부모가 앞서 가서 줄을 서 있다가 자녀가 오면 맡아둔 줄의 자리를 넘기고 다음 경로의 테마관 앞 대기줄로 이동하는 식이었다. 자녀가 서너 가지의 인기 테마관에 들어가기 위해서 부모들은 땡볕에서 족히 서너 시간은 줄을 서서 기다려야만 했다. 이러한 부모들의 희생적인 행동이 일반적이지는 않았으며 부모-자녀의 줄서기 교대 장면이 자연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좁은 공간에 가능한 많은 사람들이 줄 설 수 있도록 만들어진 꼬불꼬불한 밀집된 틈을 비집고 자녀들이 들어가야 하고 부모들은 손을 높이 치켜들어서 자녀에게 자신의 위치를 때론 큰 소리로 알리며 자리를 내어주는 장면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줄을 선 주변인들은 처음엔 무슨 비상사태인가 여기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파악을 하고 나면 다소 의아해했다. 왜냐하면 거기에 있는 대부분의 부모들은 자녀들과 함께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테마관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한국 부모들의 자녀 사랑은 각별하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우리 자녀들을 위하는 바람직한 행동인지 재고해 볼 필요는 있다. 자녀가 경험하는 양적인 결과 즉, 제한된 시간 내에 더 많은 테마관을 경험하도록 한다는 점에서는 이러한 부모의 행동이 내 자녀를 위한 최선일 수 있다. 그렇지만 더위를 참으며, 한참을 서 있는 가운데 앞으로 경험할 것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그 시간이 오기를 기다리는 때에 우리 자녀가 얻고 익히는 것이 더 많지 않을까.
나 자신도 자녀를 키우며 물질적으로 여유가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자녀가 바라는 것을 해 주는 것보다 해 주지 않는 것이 부모로서 더 힘들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은 적이 있다. 자녀가 원하는 것을 요구했을 때, 받아 든 그 순간에 기뻐하는 자녀 모습을 보고 싶어서라도 얼른 그것을 손에 쥐어주고 싶어진다. 그리고 실제 그렇게도 해 보았다. 하지만 가만 지켜본 결과, 아이들은 쉽게 얻은 것에 대해 이내 싫증내고 덜 가치를 둔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본인이 시간을 들여서 어렵게 취한 것에 대해서는 각별하게 생각하고 오랫동안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래서 내 자녀를 위해서도 자녀의 요구가 있을 때 그것을 왜 원하는지 어떻게 가질 수 있을지 등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누고 때론 일정 시간이 경과한 후에 아이가 수중에 넣을 수 있도록 하곤 했다. 그것은 어떤 것을 취하게 된 그 자체보다 그것을 손에 넣기까지의 과정이 어떠했는가가 아이에게 보다 의미 있는 경험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동경 디즈니랜드에서 부모들의 희생으로 보다 많은 테마관에 들어가 본 자녀가 시간이 지나서 기억하고 마음에 담고 있는 것은 모르긴 해도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이나 그 때의 느낌 정도일 것이다. 그렇지만 오랜 시간 줄 서서 기다렸다가 한 테마관에 들어간 자녀라면 아마도 들어가기까지의 힘든 시간과 더불어 그렇게 해서라도 누릴 수 있었던 것에 대한 특별함을 가슴에 담고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줄을 서서 기다림'에 대한 질서의식을 어린 시기부터 습관화해야 한다는 사회성 발달의 측면은 다른 기회에 나누고자 한다. 여기서는 우리 자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릴 때에 그들이 경험할 소중한 것들에 대해서 부모들이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우리 자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것은 그저 몸이 고생하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라 그들이 참고 기다린 끝에 얻는 그 무엇에 대한 가치를 배가시킬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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