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환 저 |
남자와 여자가 있다. 이들은 각각 어두컴컴한 지하 방에 갇혀 고문을 당하고 있다. 이 책은 남자와 여자의 독백이 번갈아 반복되는 형식으로 되어있다. 남자는 다른 조직원들과 함께 체포된 지하당원이었고, 여자는 남자의 뜻이 무엇이든 따를 준비가 돼 있는 아내였다.
초반에 남녀는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지난 과거를 떠올리기도 하지만 모진 고문이 계속되고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이들의 독백 속에는 의식과 무의식, 현실과 환각이 모호하게 뒤섞인다.
고문의 시간은 끝이 없는 시간이다. 남은 것은 고통만을 위해 존재하는 육체, 그것 뿐이다.
“내 가슴 덜컥 내려앉고 내 의식 끊기려 한다. 내 곁에 있는 것 당신 맞는가? 이 만남은, 당신, 이 만남이 당신, 나보다 더 먼저 떠났다는 뜻인가? 돌아와다오 제발. 내 의식이 끊기기 전에 끊김 속으로. 당신은 이런 식으로 당신일 수 없다.”('남자' 198쪽)
죽음을 눈앞에 두고, 또 상대방의 죽음을 예감하며 소리 없이 서로를 찾는 이들의 사랑은 눈물겹도록 절절하다.
“하지만 당신. 이게 생이 아니고 사랑이 아니라면, 아니면 또 무엇이 생이고 사랑이겠는가. 이 부재의 아픔 아니고서 어찌 알겠는가, 무엇보다 당신의 진짜 있음을, 설령 내 그리움이 단지 당신이라는 흙을 네모나게 잘라내는 것에, 혹은 엿듣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해도?”('여자' 180쪽)
작가는 후기에서 “이것은 서로 연락은커녕 서로에 대한 자신의 심경을 남길 수단도 시간도 없이 고문 속에 거의 같은 시간에 각각 따로 죽음을 맞는 두 연인의 상대를 향한 사랑의 심경과 육체 상태를 다룬 이야기”라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살아남은 사람들의 살아남은 이야기가 문학의 자연이라면 이런, 죽음을 스스로 겪는 방식으로 죽음을 위로하는 이 제의는, 말 그대로 문학의, 이야기의, 인위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학동네/김정환 지음/256쪽/1만2000원
배문숙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