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우 공주대 사범대학 교육학과 교수 |
사정이 이러하니 초려선생 묘역을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러나 이런 논리대로 한다면, 어떤 문화재인들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겠는가?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문화재로 지정하지 않은 채 개발부터 해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이와 같이 몰상식한 인식이 행복도시건설청이나 토지주택공사 등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소위 문화재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문화재로 지정이 되지 않았다면, 문화재로 볼 수는 없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단군이래 5000년에 달하는 역사의 발자취를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 많이 있다.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유형, 무형의 문화재로 지정하여 보존에 힘을 쏟고 있다. 수많은 유적과 유물 중에서 어떤 것을 문화재로 지정하고 있는가? 문화재라고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인가? 우선 무엇보다 문화적 관점을 무시할 수 없다. 문화는 인간의 삶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인간의 삶과 관련되어 어떤 의미를 지니지 않는 것은 문화재로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다른 하나는 역사적 의미다. 어떤 사실(史實)이나 유물이 그 사회의 역사 속에 지속적으로 의미를 부여하고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국보 1호인 남대문도 그 자체만으로 문화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남대문 자체만 놓고 보면, 그저 나무와 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사물이거나 조형물일 뿐이다. 남대문이 문화재가 될 수 있는 까닭은 그 조형물을 창조하는 과정에 작용한 인간의 노력과 정신, 심미적 정서 등이 있기 때문이다. 즉, 남대문이라는 조형물에는 거기에 살아 숨 쉬고 있는 선대의 영혼의 세계가 있으며, 우리가 남대문이라는 조형물을 매개로 하여 그 세계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시냇가에 있는 수많은 조약돌은 어느 누구도 박물관에 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중의 하나를 을지문덕 장군이 애지중지하였으며, 그것이 을지문덕 장군의 업적과 관련된다는 것이 확인되었다면, 문화재로 인정되어 박물관에 전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그것은 하찮은 돌멩이가 아니라 역사적으로 의미가 부여된 돌멩이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물이 문화재가 된다는 것은 그 사물이 선대 조상의 삶의 세계와 관련되어 특정한 정신의 세계를 표상할 수 있거나 또는 역사적인 의미부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어떤 문화재이든 그 정신적 가치나 역사적 의미를 배제하게 되면, 그것은 문화재라기보다 그저 평범한 흙덩이나 돌무더기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남대문이 문화재인 것은 남대문 속에 살아있는 정신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로 인해서 그렇게 되는 것이란 말이다.
이것이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문화재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는가? 개발우선론자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문화재 전문가들 또한 이와 같이 상식에 기초한 문화재의 의미에 대해 깊이 헤아려 주기를 간곡히 바란다. 아울러 무엇보다 소중한 문화재는 선대의 유적이나 유물들을 보존하여 그 정신적 가치와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고자 하는 '지금 여기'에 살고 있는 동시대인의 올바른 역사의식이란 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체할 수 없이 값진 선대의 유적이나 유물을 문화재로 지정하여 지키고 보존하려는 우리의 마음가짐이 바로 가장 값진 문화재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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