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법을 만드는 순간 그의 힘이 법으로 옮겨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법이 인정하지 않은 인간은 인간이 아니며 또한 법이 인정해 주면 인간이 아닌 자도 인간이 되는 것이다. 전자는 예전의 노예가 그러했고 후자는 바로 회사 등을 의미하는 법인(法人)이다. 그러면 이러한 법은 사람을 어떻게 보고 있는 것일까? 이것은 역사적인 문제로서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하고 있다. 인간의 사회 내의 위치가 바로 법에 의하여 인정됐던 것이다. 즉 고대국가가 성립된 이후 왕이 지배하는 시대에 있어서는 단지 왕의 명령에 복종하는 의무만이 있는 존재가 인간이었다. 중세에는 장원제도에서 연유된 길드제도가 사회적 기본단위가 돼 있었다. 길드 내의 도제로서 길드의 최고의 우두머리인 장인에게 복종해야 하는 존재가 인간이었다. 르네상스 이후 비로소 법은 왕이나 사회조직에 대한 의무만이 있는 존재가 아닌 인간의 자유로운 생각과 결정권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권리까지 주장할 수 있는 존재로 보게 됐던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 변하지 않고 유지되면서 근대사회의 근간이 된 경제적 자유, 즉 계약자유의 원칙을 이루게 된 것이다. 법이 오늘날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은 바로 자기 이익에 관한 한 손해 볼 줄 모르는 대단히 영리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인간이 오늘날의 법이 상정하는 것처럼 영리하고 자기 이익만을 위하여 사는 계산 밝은 존재일까? 그러나 법이 본 이러한 이기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은 계약자유라는 것을 악용하여 결국 부의 왜곡에 의한 사회적 불평등만을 초래했던 것이다.
여전히 우리시대에도 법은 인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조금 정신을 차린 법은 영리하지 못한 인간, 제대로 제 앞가림을 못하는 인간을 인정하게 됐고 이 점을 반성하면서 여러 가지 법(경제적 약자를 위한 법)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인간을 인간답게 살도록 해야 하는 법의 진정한 목적에 도달하기까지 그 길은 멀기만 한 것이다.
<대전합동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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