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기환 아트팩 대표 |
대전출신이 아닌 내게 대흥동은 그저 여느 곳보다 갤러리가 많고, 분위기 좋은 카페, 식당이 많으며 예쁜 보도블록이 깔려있는 주머니가 조금 넉넉할 때 들러보거나, 혹 누군가의 전시를 핑계로 들르던 곳이었다.
그런 이곳에 와서 1년 동안 가장 많이들은 이야기는 '왜 대흥동인가?' 라는 질문이었다. 어떤 경로를 통해 들어왔는지, 무엇이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었는지 그 이유가 궁금했던 모양이다. 첫 글은 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시작해볼까 한다. 앞으로 나 역시 묻고 싶은 것들이 우리 생활 속에 깊이 들어와 있기 때문에.
결론부터 말하면 적당했기 때문이다.
수십 번 같은 질문에 '그냥' 이라 답했지만, 사실은 적당했기 때문이라는 말이 더 맞는 듯하다. 돌아다녔다. 대다수 사람들이 공간을 구할 때 쉬이 하는 것처럼 여기저기 보증금이 얼만지, 월세는 또 얼마나 하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저기 길거리 신문과 부동산을 뒤지며 돌아다니다 정말 얻어걸린 것이 이곳 대흥동이었을 뿐이었다.
넉넉한 자금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사실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잘하는 것인지도 알지 못했다. 우선 공간이 필요했고 돈은 없었다. 그리고 이제 막 학교를 졸업했을 뿐 아무것도 없는 우리를 도울 사람도 많지 않았다.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기대 사는 것도 적성에 맞질 않으니, 양손을 비벼 썩 괜찮고 안정적인 자리에 붙어 있을 가능성도 모조리 묻어버렸다.
그렇게 아는 것도 아는 이도 하나 없이 이곳에서의 생활은 시작됐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답 없는 시작이었다. 머릿속 예상 안에서만 척척 들어맞는 계획 하나를 달랑 들고 가본 적 없는 길을 물어볼 사람도 없이 걷기로 했으니 말이다.
유명한 식당 옆이라는 것도 처음 알았고, 위층이 대안공간이란 것도 처음 알았으며, 이곳이 문화예술의 거리라는 것도 처음 알았다. 우연히 지나다 카페인 줄 알고 잘못 들어오는 사람이 전부였던 우리 지하공간을 하나 둘 사람들이 알게 되면서 우리 역시 그들을 통해 다양한 지원사업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문화예술 관련업에 대한 월세 지원이라든가, 창작활동지원 등이 그것이다. 조금은 상기된 마음으로 천천히 그와 관련된 공고문이나 서식들을 읽어 보면서, 이내 한숨이 절로 나왔다.
지원서 접수 후 1년 경과시. 3년간의 활동실적 등 읽어보는 내내 결국 너희가 진짜 할 사람들인지를 시간으로 증명해 보이라는 의미로 읽혀졌다. 많은 사람들의 말처럼 '먹튀'에 대한 예방책인지 모르겠지만, 왜 그래야 하는지 답답해졌다.
난 1년 전 그날보다 지금 힘들지 않고, 1년 전 그날보다 더 많은 해를 버텨낼 힘이 있으며, 1년 전 그날보다 더욱 많은 요령도 생겼다. 6개월 정도가 지났을 때 바닥의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바닥 가까이에 내려가 있었고, 닿지 않으려 발버둥을 쳐야 했다.
이것이 맞는지 하루에도 수십 번 나를 뒤흔들어 놓았고, 옆 사람의 어깨에 기대있으면 그 역시 나의 어깨에 기대 간신히 서 있는 정도였다. 실패는 누구도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다. 의지와 열정의 부족으로 그 어두운 길로 빠지는 것도 아니다.
왜 유독 이 문화예술 판은 그 의지와 열정을 힘든 시간으로 스스로 증명을 해내야 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문화예술지원사업들을 통해 다양한 문화적 혜택들이 이루어지고 있고, 질적 상승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지원사업이 또 하나의 벽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다. 조금 더 낮은 곳에서 가장 넘어지기 쉬운 시점에 높이든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단어 그대로의 '지원'으로 확대되길 바란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