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가정주부였던 A(34)씨는 지난해 12월 30일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다 순간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흉기를 휘둘러 살인자의 굴레를 쓰게 됐다. 그리고 검찰에 구속 기소된 A씨에게는 앞서서도 남편에게 한 차례 흉기를 휘둘러 상해를 입힌 혐의가 추가됐다. 법정에 선 이 여성은 남편에게 상습적인 폭행을 당해왔다며 정당방위(과잉방위)를 주장했다.
살해 당시에도 이 여성은 남편에게 폭행을 당하고 있었고,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는 동시에 반복된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우발적으로 남편에게 흉기를 휘둘렀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 5월 대전지법에서 열린 1심 재판에서 재판부는 이 여성의 흉기를 이용한 상해 및 살인 혐의에 대해 정당방위내지는 과잉방위를 인정하지 않고, 징역 5년 형을 선고했다.
피고 여성과 검찰은 모두 1심 판결에 불복했다. 사건의 쟁점은 이 여성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는지와 살인 행위가 정당방위에 해당하는지 여부다. 항소심을 맡은 대전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성지용)는 지난 25일 심리 과정에서 이 사건과 관련한 '시민참여 양형세미나'를 열고, 시민들의 의견을 구했다.
시민참여 양형세미나는 국민참여재판과 유사한 취지로 대전고법이 처음 도입한 것으로, 이 사건이 그 첫 대상 사건이 됐다.
이날 세미나에는 12명의 시민패널이 초청돼 해당 사건에 대한 양형 의견을 제시했다. 이들이 제시한 의견이 판결에 직접 반영되는 것은 아니나, 일반 시민의 눈높이에 맞춘 법적용을 위해 마련된 자리다.
사건의 쟁점과 관련해 시민패널들은 온전한 정당방위를 인정하지는 않았다. 다만, 우발적으로 범행이 이뤄졌고, 어린 자녀가 있는 점 등 여러 정황과 환경을 고려해 감형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항소심 선고는 다음달 17일 내려질 예정이다. 폭행을 견디다 못해 남편을 살해한 이 30대 여성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사건 당시 칼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집을 빠져나와 이웃에 도움을 구하거나 경찰에 신고해 충분히 피해자의 폭행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며 “오로지 자신을 방어할 목적만 있었다고 보기 어렵고 최초 흉기사용 후 도망칠 수 있었음에도 한 차례 더 흉기를 사용해 사망에 이르게 한 점 등을 보면 피고인이 심약적 충동에서 비롯된 공포와 경악, 당황으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었다.
이종섭 기자 nom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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