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영진]나는 김화(金化)에서 휴전을 맞았다

  • 오피니언
  • 사외칼럼

[안영진]나는 김화(金化)에서 휴전을 맞았다

[시론]안영진 중도일보 전 주필

  • 승인 2012-07-25 18:28
  • 신문게재 2012-07-26 21면
  • 안영진 중도일보 전 주필안영진 중도일보 전 주필
▲ 안영진 중도일보 전 주필
▲ 안영진 중도일보 전 주필
몸이 나른해 침대에 몸을 던져 누우니 벽에 걸린 달력과 눈이 마주친다. 세월은 빨라 벌써 7월 하순이니 그 중 27일은 잊을 수가 없다. 복달임의 달 7월이면 지표(地表)는 온통 녹음으로 뒤덮인다.

이상(李箱)은 이 풍성한 녹음 천지를 독하게 매도했다. 조물주가 세상을 창조하고 지구의 표피가 하도 엉성해서 한꺼번에 녹색화 해버렸다고…. 반면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섭은 이 무렵 산림 속에 들어가 수목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자신의 몸속에도 송진이 흐르는 것 같다고 했다.

이 두 귀재의 말은 어느 쪽이 정답인가? 우리는 편한 대로 자연주의든 다다이즘(dadaism)이든 받아들이면 될 것이다. 아낙네들이 전쟁이야기를 제일 싫어한다지만 오늘 만은 양해를 바란다.

필자는 6ㆍ25전쟁 때 휴전을 김화(金化)에서 맞았지만 실은 제주도에 있는 하사관학교 조교로 남아야 할 몸이었다. 졸업 날짜가 다가오자 하사관학교에 남아 있을 것을 조교가 설득하고, 중대장도 권유했다. 당시 조교와 중대장은 기백은 좋으나 일선에 가면 대부분 소모품으로 전사한다는 것이다.

필자를 붙잡는 이유는 입교와 졸업점수가 수위라 해서 조교로 붙들어 둘 속셈이었겠지만 필자의 전장 일선행 주장에 중대장은 “전쟁이 어떤 것인지 아직 맛을 모르는군. 일선 분대장으로 가면 대부분 소모품이 된다”고 설득했지만 필자는 완강하게 맞섰다.

그 까닭은 이랬다. 나의 건강이 일선에 가기 전에 쓰러질 지경이었다. 몇 달째 설사를 계속하고 훈련 중에 오물이 수시로 가랑이에 흘렀다. 일상 훈련은 해병대를 넘어섰다. 한 겨울 아침 동이 트기 전 돌로 얼음을 깨고 알몸으로 강물에 뛰어들게 했다. 조금만 주저하면 머리 위로 총탄이 '핑핑' 날아들었다. 얼음을 깨고 강물에 뛰어들면 깨진 얼음덩이가 앞가슴을 칼로 에이는 듯하고 그렇게 강물속을 헤매다 나오면 머리가 핑 돌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훈련은 그 뿐만 아니다. 한라산 등산길을 맨발로 행군하다 보면 눈 덮인 통행로에는 피가 흔근하다.

제주도를 마다하고 필자가 제일 먼저 전방에 도착한 곳은 철원이었다. 중대본부가 저 유명한 '도피안사', 그 다음은 철원. 개활지에 포진했다가 백마산 전투를 치렀다. 백마산은 철원, 김화, 평강, 원산으로 통하는 요지로 대대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중공군 군단 병력과 인민군 병력이 아군과 맞붙어 격전을 벌였다. 산 높이가 2m 줄었다고 할 정도였다. 그해 나에게 조그마한 행운이 찾아왔다. 백마산 전투 때 수색 나갔다가 숲속에서 기어가는 중공군을 덮쳐 포로를 잡았던 것이다. 그 바람에 지금 살림집 정문에는 '국가유공자의 집'이란 팻말이 붙고 다달이 얼마간의 병원비가 나온다.

김화 전투시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다. 옆 부대 수도 사단 부사단장(포병사령관)이 전사했다는 소문이었다. 신문에도 '장렬한 전사' 등의 표제로 장식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실이 아니었다.

내용은 벙커에서 참모회의를 하던 중 중공군의 습격을 받아 방망이 수류탄이 터지자 모두 손을 들었는데 사령관이 포로가 되고 말았다. 그 중 소위 한 사람이 운 좋게 데스크 밑으로 숨었다가 살아났다.

당시 장렬하게 전사했다던 포병사령관은 휴전 후 포로교환 때 살아왔다. 전쟁에선 흔히 있는 일이다. 적의 군함 두 척을 격침하고 5척을 격침했다고 하는 것은 어느 나라나 공통점이다.

특히 태평양전쟁 때 일본은 더 심했다. 일본이 손을 들고 맥아더와 일본 측이 전후 보상을 논할 때 맥아더는 말했다. “그 액면을 일본의 신문방송이 떠들어댄 수치가 있지 않소! 그대로만 보상하시오.”

이 말에 일본 측이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는 이야기는 지금도 유명하다. 휴전 일을 앞두고 고향생각을 한다. 사변 당시 나와 한날 한시에 군에 갔던 권 군. 훈련소 시절 화장실을 가도 떨어져선 안 된다고 화장실 문을 지키던 친구.

그는 휴전하던 해 속초에서 전사했다. 오랜 세월 나는 그의 가족 앞에서는 죄인처럼 고개를 숙였다. 살아있다는 미안함에서…. 그러나 세월이 흘러 이제 고향의 그 부모형제도 모두 세상을 떠났다. 이젠 고향엘 가도 아는 얼굴이 없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유성 둔곡 A4블록 공공주택 연말 첫삽 뜨나
  2.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3. [기고] 공무원의 첫발 100일, 조직문화 속에서 배우고 성장하며
  4. ‘우크라이나에 군사지원·전쟁개입 하지 말라’
  5. JMS 정명석 성범죄 피해자들 손해배상 민사소송 시작
  1. 대전보건대, 대학연합 뉴트로 스포츠 경진·비만해결 풋살대회 성료
  2. 대전 유통업계, 크리스마스 대목 잡아라... 트리와 대대적 마케팅으로 분주
  3. 한국자유총연맹 산내동위원회, '사랑의 반찬 나눔' 온정 전해
  4. 구본길에 박상원까지! 파리 펜싱 영웅들 다모였다! 대전서 열린 전국 펜싱대회
  5. 대전시, 여의도에 배수진... 국비확보 총력

헤드라인 뉴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뜨끈한 한 끼에 마음도 녹아"… 함께 온기 나누는 사람들

27일 낮 12시께 눈발까지 흩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대전 중구 한 교회의 식당은 뜨끈한 된장국에 훈훈한 공기가 감돌았다. 식당 안에서는 대전자원봉사연합회 소속 자원봉사자들이 부지런히 음식을 나르며 어르신들을 대접하고 있었다. 150여 명의 어르신이 빼곡히 마주 앉아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기다렸다. 얇은 패딩과 목도리 차림인 어르신들은 강한 바람을 뚫고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밥도 같이 먹어야 맛있지." 한 어르신이 식당에 들어서자 자원봉사자가 빈자리로 안내했다. 이곳에 오는 대부분은 75세 이상의 독거 노인이다. 매일 혼..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홈 승리하고 1부 간다"… 충남아산FC 28일 승강전 홈경기

창단 후 첫 K리그1 승격에 도전하는 충남아산FC가 승강전 홈경기를 앞두고 관심이 뜨거워 지고 있다. 충남아산FC는 28일 대구FC와 승강전 첫 경기를 천안종합운동장에서 홈 경기로 치른다. 홈 경기장인 아산 이순신종합운동장 잔디 교체 공사로 인해 임시 경기장으로 천안에서 경기를 하게 됐다. 승강전은 홈 앤드 어웨이 방식으로 28일 홈 경기 사흘 후인 12월 1일 대구로 이동해 어웨이 경기를 치른다. 승리수·합산 득실차 순으로 최종 승격팀을 정하게 되며 원정 다득점 규정은 적용하지 않아 1·2차전 결과에 따라 연장전 또는 승부차기까지..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시도 "2027 하계U대회 반드시 성공"… 제2차 위원총회

충청권 4개 시도가 2027년 열리는 하걔세계대학경기대회 성공 개최를 재차 다짐했다. 2027 충청권 하계세계대학경기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강창희, 이하 조직위)는 27일 대전 호텔 ICC 크리스탈볼룸에서 2024년 제2차 위원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총회는 지난 3월 강 위원장이 조직위원장으로 취임한 이후 처음 개최된 것이다. 행사에는 대전시 세종시 충남도 충북도 등 충청권 4개 시도 부지사와 대한체육회 부회장, 대한대학스포츠위원회 위원장, 시도 체육회장, 시도의회 의장 등이 참석했다. 강 위원장과 조직위원회 위원이 공식적으로 첫..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거리 나설 준비 마친 구세군 자선냄비

  •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12월부터 5인승 이상 자동차 소화기 설치 의무화

  • 첫 눈 맞으며 출근 첫 눈 맞으며 출근

  •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 가을의 끝자락 ‘낙엽쌓인 도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