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가정에는 비교적 작은 그림들이 있었지만 이발소 그림은 달랐다. 이발소는 대개가 시골의 면소재지나 읍내에 있었고, 비교적 좋은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다. 즉 현대식 시설을 갖추고 있는 약방이나 상점등과 함께 몇안되는 곳 가운데 하나였다. 당시로서는 제법 잘 꾸며져 있어서 사랑방 역할도 하였다. 이발소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이 거울 위 벽에 걸려 있는 커다란 액자였다. 다름아닌 이발소 그림이었다. 주로 아홉 마리의 새끼돼지가 누워있는 커다란 어미돼지의 젖을 파고 있는 그림과 우거진 숲속에서 물보라를 튀기며 돌아가는 물레방아 그림이 걸려 있었다. 이 그림들을 보면서 어미돼지의 풍요로운 품처럼 우리의 생활도 풍요롭기를 염원하곤 하였다. 어떤이들은 가치없는 그림이라는 뜻으로 이발소그림 같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이발소 그림들은 이발소가 개업할 때 번창하기를 기원하면서 개인이나 단체의 이름을 새겨 선물한 것들이었다. 모두가 잘 되기를 바라는 소망이 담겨 있어 이보다 더 귀하고 값진 그림은 없었다.
지금은 화려한 네온사인이나 조명등으로 가득차 있어서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 되었지만, 아무리 화려해도 그 이발소 그림이 그리운 것은 항상 희망의 꿈을 꾸게 해주었고 푸근한 정이 깃들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정동찬ㆍ국립중앙과학관 전시개발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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