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순택]꼴찌에게 갈채를

  • 오피니언
  • 데스크시각

[안순택]꼴찌에게 갈채를

[중도시평]안순택 논설위원

  • 승인 2012-07-24 14:06
  • 신문게재 2012-07-25 20면
  • 안순택 기자안순택 기자
▲ 안순택 논설위원
▲ 안순택 논설위원
한동안은 잠 못 드는 날이 잦을 것 같다. 찐득한 열대야 때문이 아니다. 사흘 뒤면 런던올림픽이 개막한다. 기쁨은 병아리 눈물만큼 조금씩 생기고 아픔은 눈 들어 바라보는 곳곳에 널려 있는 세상에서, 올림픽 때마다 팀 코리아 선수들은 코 끝 알싸한 감동과 시원한 희망의 바람을 우리에게 선물해 주었다. 그걸 놓칠 순 없다.

올림픽을 앞두고는 다짐을 하곤 했다. 메달을 좇기보다 가슴에 단 태극마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내리라는 다짐. 베이징올림픽 때도 그랬다. '아시아인은 안 된다'는 수영 자유형에서 금물살을 가른 박태환의 신화에 환호하면서, 부상으로 쓰러지면서도 끝까지 바벨을 놓지 않은 이배영에게도 손이 부서져라 갈채를 보냈다. 우리 선수뿐이 아니다. 의족을 하고 수영경기에 참가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나탈리 뒤 투아, 포탄을 피해 달리기 연습을 했다는 팔레스타인의 나데르알 마스리도 기억난다. 이들을 만나는 날, 나는 저녁 대신 감동을 먹었다.

올림픽 때마다 번번이 다짐을 했다는 것은 다짐을 해도 메달 색깔에 자꾸 눈이 가더라는 고백이다. 하기야 친구들끼리 축구를 해도 이기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올림픽이라고 다르겠는가. 참가하는 데 의의가 있다? 올림픽의 이 멋진 신조도 실은 지저분한 승부욕 탓에 나왔다.

런던올림픽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48년 7월 태극기를 앞세우고 처음으로 올림픽 참가를 위해 런던으로 향하던 67명의 대한민국 선수단의 가슴은 뿌듯한 감격으로 벅찼을 것이다. 런던은 1908년에도 올림픽을 유치했다. 이 올림픽은 영국과 미국, 두 나라의 대립이 얼마나 치열했던지 메인스타디움의 이름을 따 '셰퍼드 부시의 전투(The Battle of Shepherd's Bush)'로 불린다. 스포츠를 신사의 순수한 여가문화로 여겼던 영국은 미국이 대표선수 훈련에 재정 지원을 했다는 소식에 천박하다고 비난하며 개회식장에 미국 국기를 게양하지 않았다. 미국 선수단은 입장하면서 영국 국왕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 것으로 보복했다. 영국 줄다리기 팀은 강철 테가 부착된 부츠를 신고 있었다. 운동화를 신은 미국 팀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400m달리기에선 영국 선수가 3위를 하자 1, 2위로 들어온 미국 선수들이 진로를 방해했다며 재경기를 선언하는 촌극이 벌어졌다. 미국 선수들은 재경기를 거부했고 영국 선수는 혼자 뛰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영국과 미국 선수들의 감정대립이 도를 넘어서자 영국 국교회의 탈봇(Talbot) 주교는 “올림픽에서 중요한 것은 승리가 아니라 참가하는 데 있다”며 자제를 촉구했고, 쿠베르탱 IOC위원장은 “삶에서 중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노력이다. 본질적인 것은 정복이 아니라 훌륭하게 싸우는 것”이라고 타일렀다. 천박한 경쟁에 던져진 충고들이 묶여서 1934년 LA올림픽에 와 '올림픽 신조(Olympic Creed)'가 되었던 것.

이번 올림픽만큼은 메달 경쟁에 눈 돌리지 않고 선수 개개인의 열정에 환호하고 싶다. 그들의 성취나 아쉬움이 우리 고된 일상에 던질 다양한 의미를 생각해 볼 것이다. 가능하다면 고인이 된 박완서 작가가 그의 작품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느꼈다던 희열을 느껴 보고도 싶다.

“그날 내가 20등, 30등에서 꼴찌 주자에게까지 보낸 열심스러운 박수갈채는 몇 년 전 박신자 선수한테 보낸 환호만큼이나 신나는 것이었고, 더 깊이 감동스러운 것이었고, 더 육친애(肉親愛)적인 것이었고, 전혀 새로운 희열을 동반한 것이었다.”

지금 나라 안에선 다른 의미의 올림픽이 열리고 있다. 여당과 야당 대선주자들이 벌이는 경선이란 이름의 올림픽이다.

스포츠 제전인 올림픽의 정신은 휴머니티ㆍ건강ㆍ사랑ㆍ성취ㆍ최선ㆍ인내ㆍ배려ㆍ신사도 같은 인간다움의 발로다. 경선 올림픽이라고 다를 게 없다. 정정당당하게 경쟁하고 국민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할 것이다. 다만 여기에 도덕성에 더해 나라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이 사람만 믿고 따르면 5년 후엔 달라져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확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이 바라는 지도자는 당장 표가 안 되더라도, 진정 나라가 잘되는 길이라면 당당하게 말하고 밀고 갈 수 있는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라면 꼴찌 한들 어떠랴. 국민들은 기꺼이 박수를 보낼 것이다.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현장]3층 높이 쓰레기더미 주택 대청소…일부만 치웠는데 21톤 쏟아져
  2.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3. 차세대 스마트 교통안전 플랫폼 전문기업, '(주)퀀텀게이트' 주목
  4.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5. 전국 아파트 값 하락 전환… 충청권 하락 폭 더 커져
  1. 대전시, 12월부터 배출가스 5등급 차량 운행 제한
  2. 유등노인복지관, 후원자.자원봉사자의 날
  3. 생명종합사회복지관, 마을축제 '세대공감 뉴-트로 축제' 개최
  4. [화제의 인물]직원들 환갑잔치 해주는 대전아너소사이어티 117호 고윤석 (주)파인네스트 대표
  5. 월평종합사회복지관과 '사랑의 오누이 & 사랑 나누기' 결연활동한 동방고 국무총리 표창

헤드라인 뉴스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영정그림 속 미소 띤 환이… “같은 슬픔 반복되지 않길”

"환이야, 많이 아팠지. 네가 떠나는 금요일, 마침 우리를 만나고서 작별했지. 이별이 헛되지 않게 최선을 다해 노력할게. -환이를 사랑하는 선생님들이" 21일 대전 서구 괴곡동 대전시립 추모공원에 작별의 편지를 읽는 낮은 목소리가 말 없는 무덤을 맴돌았다. 시립묘지 안에 정성스럽게 키운 향나무 아래에 방임과 학대 속에 고통을 겪은 '환이(가명)'는 그렇게 안장됐다. 2022년 11월 친모의 학대로 의식을 잃은 채 구조된 환이는 충남대병원 소아 중환자실에서 24개월을 치료에 응했고, 외롭지 않았다. 간호사와 의사 선생님이 24시간 환..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대전서 금강 수자원 공청회, 지천댐 맞물려 고성·갈등 '얼룩'

22일 대전에서 열린 환경부의 금강권역 하천유역 수자원관리계획 공청회가 환경단체와 청양 주민들의 강한 반발 속에 개최 2시간 만에 종료됐다. 환경부는 이날 오후 2시부터 대전컨벤션센터(DCC)에서 공청회를 개최했다. 환경단체와 청양 지천댐을 반대하는 시민들은 공청회 개최 전부터 단상에 가까운 앞좌석에 앉아 '꼼수로 신규댐 건설을 획책하는 졸속 공청회 반대한다' 등의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에 경찰은 경찰력을 투입해 공청회와 토론이 진행될 단상 앞을 지켰다. 서해엽 환경부 수자원개발과장 "정상적인 공청회 진행을 위해 정숙해달라"며 마..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롯데백화점 대전점, ‘퍼피 해피니스’ 팝업스토어 진행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