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고야 한국한의학연구원 한약기초연구그룹 선임연구원 |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의 첨병인 제약회사의 입장에서 그러한 유전자원이 곧 돈이 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식물로부터 획기적인 약리효과를 발견하여 약품으로 개발하면, 투입한 비용의 수백~수만 배에 이르는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유명한 사례인 파클리탁셀(탁솔)의 경우, 1960년대 미국 국립암연구소(NCI)에서 광범위한 식물 수집 연구를 통해 발견된 물질로, 주목과 식물인 미국주목(Taxus brevifolia)의 수피에서 분리된 것이다. 이후 세포실험, 동물실험과 임상시험을 거쳐 항암 효과가 검증된 파클리탁셀은 1990년대 초에 제약회사로 이관되었고, 연간 1조 원 이상의 매출을 안겨주었다. 연간 4만t씩 생산되며 만병통치약처럼 쓰이는 아세틸살리실산(아스피린)도 고대로부터 사용된 버드나무와 조팝나무 추출물에서 기원한 것이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한약처럼 동식물을 약으로 직접 활용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흔히 합성물질이라고 인식되는 현대 약품도 상당수가 천연물을 가공하여 만든다. 여기에는 천연물 자체의 약리효과를 이용하는 사례도 있고, 화합물 합성의 경제적 문제 때문에 천연물로부터 원료를 추출하는 사례도 있다. 쑥 추출물을 농축한 위염 치료제인 스티렌정은 전자, 팔각회향으로부터 원료물질을 얻는 신종플루 치료제인 타미플루는 후자에 속한다. 모든 경우를 막론하고 천연물로부터 고부가가치를 창출했다는 점은 동일하다.
이처럼 천연물의 가치가 높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고 있다. 전 세계의 생명ㆍ의약 분야 연구자들이 약리효과가 좋은 천연물을 찾는 데 혈안이 되어 있고, 이에 따라 수많은 학술논문과 특허가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남들이 이미 밝혀낸 것, 외국에서 이미 특허가 출원된 것은 연구해봐야 뒷북치기를 면하기 어렵고, 상용화하기도 힘들다. 그래서 거대 제약회사들은 밀림이나 사막에 자라는 생소한 식물을 찾아다니는 것이다. 기존에 연구되지 않은, 따라서 어떤 커다란 가치를 지니고 있을지 모르는 유전자원을 선점하기 위해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도 열대우림 등으로 탐사를 나서야 할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식물은 4000여 종에 달하며,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분포하는 특산식물은 분류방법에 따라 400~800여 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산식물은 아직 연구가 미미하기 때문에 해외 오지의 희귀식물만큼이나 잠재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선진국과의 유전자원 확보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갖는다.
우리나라 특산식물은 주로 설악산, 지리산 등 산악지대나 울릉도, 제주도 등 도서지역에 분포한다. 그 중에서도 도서지역, 특히 무인도는 사람의 손길이 미치지 않아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이고, 지역 고유종이 풍부하게 잘 보존되어 있으며, 아직 보고되지 않은 새로운 유전자원이 존재할 여지도 크다. 우리나라 연안의 3000여 개 섬 중에서 무인도가 85%에 이르는데, 이 중에서 체계적인 생태조사가 이루어진 곳은 유인도를 중심으로 20%가 채 되지 않는다. 생태조사가 이루어진 곳이라 해도 유전자원에 대한 효능평가 등 활용성 검토가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비단 약용뿐 아니라, 식품이나 기타 산업소재로서도 유전자원의 가치는 높다. 예를 들어 울릉도의 특산식물인 울릉산마늘(명이나물)은 최근 수요가 급증하면서 농가 소득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남서해안에 자생하는 특산식물인 황칠나무는 그 수액을 전통가구 등의 고급 도료로 사용하며, 최근에는 건강식품으로도 이용되고 있다. 이처럼 부가가치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많은 조사와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파클리탁셀도 발견에서 시판까지 30년의 세월이 소요되었을 만큼 유전자원의 상용화는 쉽지 않은 일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연안의 유전자원 보고라 할 수 있는 도서지역에 관심을 갖고, 특히 무인도에서 유용한 유전자원의 탐색과 조사 그리고 연구를 서둘러야 할 때다. 선진국과 다국적 제약 기업들이 눈독을 들이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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